[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매질에 못 이겨 탈출한 ‘빠삐용들의 시대’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매질에 못 이겨 탈출한...
‘빠삐용’을 아십니까.


‘빠삐용’을 아십니까.

빠삐용은 고전적인 탈옥영화다. 1974년에 국내에서 개봉됐던 이 영화는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 두 명배우의 연기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빠삐용 역의 스티브 맥퀸은 자유를 향해 끝없는 탈주를 시도한다. 음습한 감옥에서 바퀴벌레를 잡아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던 그는 끝내 자유를 찾았다.

‘빠삐용’은 특히 야구계에서 지도자의 매질에 못 이겨 합숙소를 탈출, 도망간 선수들을 상징적으로 일컫는다. 1970, 80년대는 그야말로 ‘빠삐용들의 시대’였다.

사랑의 매로 치부하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운동선수들에게 구타는 일상화돼 있었다.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인 시대였다. 지도자는 매질로 선수들을 다스렸고, 권위를 유지하려 했다. 감독과 코치, 선배들의 매질에 견디다 못해 개인으로, 혹은 때에 따라 학년별로 집단 탈출을 감행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마치 자유를 찾아 탈옥을 꾀하는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처럼. 심지어는 구타에 시달리다가 끝내 목숨을 끊은 불행한 사례도 있었다.

1980년대 초에 필자는 고려대 야구부에 몸담고 있던 J라는 내야수가 감독의 구타에 못 이겨 합숙소를 이탈한 사건을 두 차례나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북일고를 나온 유망주였던 그는 숙소 이탈과 복귀를 반복했다. 당시 고려대 야구부 C감독이 기자에게 따지듯이 항의를 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이다.

고인이 된 C감독은 선수들을 ‘잘 패기로 소문난’ 지도자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소환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 학원 스포츠 폭력 사태를 보면서, 차제에 이런 옛일도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당시 그의 밑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이들의 증언을 통해 그 시절 얼마나 구타가 만연했는지를 정리해본다. 학원 스포츠 폭력은 구시대의 ‘악령’이다.

한국프로야구 초대 신인왕(1983년)이었던 박종훈(62) 전 한화 이글스 야구단 단장(현 KBO 경기운영위원)과 박 위원의 고교 1년 후배이자 1978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로 고교 최고의 강타자였던 김남수(62. 제주도 서귀포 거주) 씨가 들려준 고려대 시절의 회상은 빛바랜 영화의 낡은 필름의 한 장면 같은 얘기였다. 40년 세월 저편의 일이었지만, 그들의 기억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했다.

“(C감독한테) 누구라 할 것 없이 야구부 선수 거의 많이 맞았다. 덜 맞은 사람은 있으나 학기 시작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감독이) 한 명 정도는 아예 타깃으로 삼았던 것 같다. 학년별로 유달리 많이 맞은 선수가 있었다.”

박종훈 위원은 “매질이 보편화,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안 맞는 학교에 들어가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감독, 선배 가릴 것 없이 그 시절에는 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매’로 여겼고, 무섭고 두려웠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보았다. 비록 웃으면서 옛일을 얘기하기는 했지만 너무나 아픈 기억이었을 터.

박 위원은 “최근 학원 스포츠 폭력뉴스를 접하면서 당사자들은 굉장히 억울하고 힘든 시간이었겠으나 그때는 분위기가 그랬다. 시대에 따라서 지금은 죄악시, 범죄시하지만 그 시대까지 싸잡아서 ‘범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다만 흐름에 의해 정리해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박 위원은 “일상화된 구타를 사랑의 매로 표현하기에는 그렇다. 좀 더 강력한 폭력으로 생각한다. (그런 폭력에) 견디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매질 때문에 운동을 잘하는 선수가 중도에 그만둔 일이 많았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한 선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종훈 위원이 지목한 선수는 광주상고를 나온 투수였다. 광주상고 4번 타자로 고교 시절 재능을 보였던 그는 감독의 상습 구타에 견디다 못해 여러 차례 숙소에서 도망쳤고, 대학 2학년 때인가 결국 야구를 접고 군대에 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얘기는 김남수 씨도 같이 증언했다.

박종훈 위원은 “(구타를 피하려고) 운동부 중에 도망 다니는 애들 많아 당시 그들을 표현한 것이 ‘빠삐용’이었다. 감독이나 선배들에게 매를 맞으면 도망 다녔고, 도저히 못 참아서 학년별로 집단 도망도 가고 그랬다.”면서 “아무개 선수의 경우는 도망갔다가 돌아오니까 감독이 ‘그래, 너희들이 얘기하니까 한 번 봐줄게’ 그러면서 또 때렸다. 그 후 군대에 가서 자살했다. 그런 자질이 있었던 선수가 그만둔 사례가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술회했다.

불행한 과거였다. 거의 모든 지도자가 체벌로 팀을 이끌고 지도력 유지했던 시절이었다. 박종훈 위원은 고교 시절의 쓰라린 기억도 끄집어냈다.

“(고려대) C감독이나 신일고 H감독, 두 분 다 (체벌로) 어마어마했다. 어쨌든 (고교 때는) 야구 잘하는 선수보다 못하는 선수는 무지하게 얻어맞았다”며 한가지 일화를 털어놓았다.

겨울에 대구로 캠프를 갔다고 했다. 대구상고 선수들과 합동 훈련을 하는데 H감독이 훈련 도중 체벌을 내리자 평소 선수들에게 손을 안 대기로 소문났던 대구상고 J감독이 민망했던지 덩달아 선수들에게 체벌을 주는 일이 생겼다는 얘기였다.

박종훈 위원은 “듣기로는 J감독은 체벌을 안 하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기니까 동기였던 이만수, 오대석 등 대구상고 선수들이 ‘너희들, 이제는 대구로 오지 마라. 우리 감독은 안 때리는 감독인데 너희 때문에 괜히 맞았다’는 말까지 들었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김남수 씨는 농협에서 정년퇴직한 뒤 서귀포로 귀촌, 귤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귤 농사짓고, 귤 팔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한 그는 대학 시절 감독의 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렸던 경험담을 담담하게 풀어 놓았다.

신일고 3학년 때 4할6푼7리의 당시 최고 타율로 이영민 타격상을 받았던 김남수 씨는 고려대 진학 후 감독의 외면과 체벌에 고초를 숱하게 겪었다. 선수로서 중요한 시기였던 대학 때 제대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해 프로 진출도 단념해야 했고 실업팀 농협에 입단해 직원으로 정년을 마쳤다.

김남수 씨는 “C, H감독, 유명했지요. 옛날에야 다 그랬지요”라면서 “(C감독은) 많이 팼다. 매질이 다반사였고, 뭐 요즘처럼 신고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문제 된 배구 같은 경우도 부모가 설쳤듯이, 부모가 찾아와 술 한잔하면 잘 봐주는 것도 있었고”라면서 “그때는 하루라도 안 맞으면 잠이 안 오고 괜히 불안할 정도였다. 상급생이 하급생을 패는 것도 당연시됐고, 연쇄 구타도 잦았다”고 돌아봤다.

“그 양반(C감독)이 아무튼 나이 30대 후반에 (고려대에) 들어와 돌아가실 때까지 (감독을)했으니까. 나는 그때 맞는 것은 차라리 상관없었는데 차별을 많이 해 괴로웠다. 고교 타자 1등으로 (스카우트 돼) 들어갔는데 이리저리 돌리니까 참기 어려웠다. 2학년 때 군대 간다고 (숙소를 이탈) 나갔다가 들어갔고, 경기를 못 뛰게 했다. 지방대회에서 타격상을 받은 보름 뒤에 열린 중앙대회에 그래도 안 써줘 상무로 가려고 했으나 대학 합의서를 안 떼줘 못 갔다. 들어와 다시 ‘빠따’ 맞고 대타로나 나선 게 고작이었다. 대학 시절 전체 타석이 50타석도 안 될 것이다.”

고려대로 진학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던 그는 “지방대회에만 어쩌다 주전으로 나갔고, 4학년 때도 주전으로 써주질 않았다. 다른 대학 갔으면 야구 쪽으로 계속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후회를 안 하는데, 어찌 보면 프로로 안 간 게 잘한 일일 수도 있다. (농협에서) 정년까지 했으니까.”라고 말했다.

박종훈 위원과 마찬가지로 김남수 씨도 ‘아무개 선수 사건’을 언급했다. “고려대 1년 선배였던 그는 2학년 때 하도 많이 맞아 운동을 그만두고 군대에 가서 자살했다. 당시 고대 내에서는 학교신문에도 나고 아주 시끄러웠다. 왼손잡이 투수였는데 (감독이) 하도 못살게 굴었으니까. (C감독은) 경기장에서도 때렸다. 기자들이 있건 없건 아랑곳없이 때렸다. 손으로 때리고 발로도 차고, 그 단단한 아이스하키 스틱으로도 때렸다”고 털어놓았다.

폭력 지도자 밑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두 유명 야구선수의 회상은 그 시대의 그늘 한 자락을 펼쳐 보였을 뿐이다. 비단 야구뿐만 아니라 이 나라 모든 학원 스포츠계에서 폭력이 그만큼 널리 퍼져있었고 밥 먹듯이 벌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험한 세월을 지나온 김남수 씨는 “집사람에게도 얘기했는데 그 시절의 (야구계) 암투와 폭력에 대해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까지 말했다.

환갑을 넘긴 그들이 겪은 폭력의 시대에서 반세기 가까이 흘렀으나 학원 폭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젠 시대의 우울을 말끔히 걷어내야 할 때다. 악령을 몰아내야 할 때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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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2 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