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정보’를 얻고, 아마는 ‘기술’을 깨우치고…이천 엘리야병원 프로암 골프대회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20.12.23 13: 17

 골프에서 프로암대회는 일방적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인적 교류’라는 기치 아래 아마추어들이 프로 골퍼들의 실전 모습을 가까이서 접해본다는 의미가 주된 취지다. 그런데 이런 프로암대회도 있다. 프로가 건강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어가는 대회다.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골프 의학’을 연구하는 의사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구조다.
코로나19 창궐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금처럼 강화되기 전인 이달 초, 충북의 한 골프장에 한국 골프계를 주름잡는 쟁쟁한 선수들이 모였다. 한국프로골프(KPGA) 선수회 회장 홍순상, 2019시즌 제네시스 대상 수상자 문경준, 2020 KPGA 투어 GS칼텍스 매경오픈 우승자 이태희, ‘한국의 디섐보’ 장타왕 김봉섭, KLPGA 투어 통산 2승의 박채윤, 2015년 KLPGA 보그너 MBN 여자오픈 우승자 하민송, 2019시즌 KLPGA 신인왕 조아연, 2021시즌 활약이 기대되는 KLPGA 루키 정시우 프로가 주인공들이다.
이들과 함께 대회를 펼칠 상대는 전원이 의료계 종사자들이다. 이천엘리야병원 김기성 원장, 이천엘리야병원 이기현 관절센터장, 송경섭정형외과 송경섭 원장, 차앤조 정형외과 차상도 대표원장, 동탄의 캠프나인 정형외과 유연식 원장, 이천엘리야병원 정호중 원장, 이응주정형외과의원 이응주 원장 등이다.

병원명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점은 ‘정형외과’다. 어깨, 척추, 무릎, 손발목 관절 등이 이들의 전공분야다. 그런데 병원 이름으로는 알 수 없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골프 사랑이다. 골프 동호회니, 골프 애호가라는 말로 설명할 수준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대한골프의학연구회 소속 의사들이다.
2017년 발족된 대한골프의학연구회는 이천 엘리야병원 김기성 원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정형외과 의사들이 골프라는 운동에 의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학회다. 골프를 하다 흔히 접할 수 있는 부상과 치료, 그리고 더 중요한 예방법을 연구하는 조직이다. 물론 시작은 골프를 취미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그 접근법은 매우 전문적이고 학술적이다. 대한골프의학회 3대 회장으로 뽑혀 새해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김기성 원장은 골프 티칭 프로 자격증도 갖고 있을 정도로 골프 사랑이 남다르다.
이 학회는 최근 연구 성과를 도출해 올바른 스트레칭을 위한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골프 시작 전에 우리가 흔히 하는 스트레칭은 근육을 늘려주는 동작에 치중해 있는데 이는 오히려 근력을 약화시켜 부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주장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스트레칭 동작은 ‘정적인 스트레칭’에 속하는데 정적인 스트레칭은 운동이 끝난 뒤에 하는 게 맞다고 한다. 오히려 경기 전에는 ‘동적인 스트레칭’을 해야 근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학회의 연구 결과는 ‘골프 운동 전 동적스트레칭-대한골프의학연구회&리셋재활의학과’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으로 잘 정리돼 있다.
구성원들이 이렇다보니 ‘이천 엘리야병원 프로암 골프대회’에서는 행사 중에 오가는 대화 주제가 여느 대회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문경준 프로는 “일본에서 활동할 때를 돌이켜 보면 주로 동적 스트레칭을 했던 게 생각난다. 스트레칭만 잘 해도 허리 통증이 없어질 때도 있었다. 프로 선수들에게 스트레칭은 사실상 경기의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함께 경기한 전문의들로부터 부상 예방에 대한 좋은 정보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하민송 프로는 “부상도 부상이지만 심리적 불안감도 선수에게는 큰 변수가 된다. 정형외과 전문의들이지만 치열한 경쟁과 무수한 결정의 순간들을 지내온 인생 선배이기도 해 자주 찾아 뵙고 인생 상담까지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세 자녀의 아버지인 이태희 프로도 “함께 플레이 한 원장님들의 골프 열의가 정말 대단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육아와 교육 문제가 현실이 됐는데, 인생 상담도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홍순상 프로는 행사가 성사된 자체를 고마워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소규모로 열린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프로들은 정규 대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시작은 2019 시즌 KLPGA 투어 신인왕 조아연의 역할이 컸다. 조아연은 대한골프의학연구회의 취지를 듣고 크게 고심하지 않고 재능기부에 뛰어들었다. 골프의학연구회에는 프로골퍼들의 운동법과 부상, 그리고 치료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절실한데 그 역할을 기꺼이 맡겠노라고 나섰다. 
조아연은 “제 경기복에는 이천 엘리야병원 마크가 달려 있는데, 볼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 내가 뭔가 체계적인 케어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몸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드니 심리적 불안감도 떨치게 된다. 한번은 손목이 아파서 테이핑을 하고 경기에 나설 생각이었는데, 혹시나 해서 김기성 원장님께 물어봤더니 못하게 하더라. 테이핑은 근육을 잡아줘 당장에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근육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 대신 대한골프의학연구회 이상진 이사님이 개발한 피코 밴드를 추천했는데, 그걸로 효과를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조아연은 프로골퍼와 대한골프의학연구회를 연결하는 매신저 구실도 톡톡히 했다. 주변 프로선수들을 하나둘 소개해 대한골프의학연구회에 재능 기부로 참여하게 했다. 남자 선수들 쪽에선 김봉섭 프로가 그 임무를 맡았다.
이달 초 열린 ‘이천 엘리야병원 프로암 골프대회’는 이렇게 성사됐다. 물론 홍순상 프로가 말한 것처럼 ‘소규모’로 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다. 코로나19가 대규모 행사를 막았다. 코로나19가 없었더라면 ‘대한골프의학연구회 프로암 골프대회’가 됐겠지만 코로나19를 막고자 하는 정부시책을 따르는 게 더 중요했다. 대회는 규모가 축소됐고, 번듯한 출범식도 없이 비대면으로 치러졌다. 대회 이름이 ‘대한골프의학연구회’에서 ‘이천 엘리야병원’으로 바뀐 것은 엘리야병원 원장들이 대한골프의학연구회에 다수 참여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 대한골프의학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게 될 김기성 원장은 “8명의 프로선수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재능기부에 나서 주었다. 뭐라 감사의 말을 표해야 할 지 모르겠다. 대한골프의학연구회는 골프손상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전문적인 연구를 계속할 것이다. 재능기부에 나서 준 여러 프로들의 성의에 보답하는 게 그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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