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청부사' 최재호 강릉고 감독, 강원야구 새역사를 열다
OSEN 박선양 기자
발행 2020.12.09 11: 13

열악한 조건속에서 ‘우승 청부사’의 면모를 증명하다
 
“작년부터 3번 결승전에서 매번 패해 준우승할 때는 정말 멘붕이었습니다. 다행히 4번째 우승도전인 대통령기에서 정상에 섰을 때는 이전 다른 학교서 우승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만큼 값진 우승이었습니다.”

지도자 생활 37년차로 초중고교까지 한국학생야구의 한 축으로 활약하고 있는 최재호(60) 강릉고 감독은 아직도 지난 8월 대통령배에서 우승했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최 감독은 2017년 6월 강릉고에 부임한 후 3년만에 팀을 전국 강호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고교야구 우승청부사’라는 별명에 걸맞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강릉고 야구부 창단 첫 번째 전국대회 우승이자 강원도 고교야구팀 사상 첫 정상 등극이었다. 최 감독 본인에게는 이전 서울 명문고들에서 일군 8번의 우승에 이은 9번째였다. 강릉고에서 강원도 야구의 새역사를 쓰고 있는 최재호 감독을 만나보았다. 최감독은 지난 8일 열린 2020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에서 아마야구 지도자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지난 해 2개 전국대회(청룡기, 봉황대기)에 이어 올해 6월 황금사자기까지 준우승만 3번한 끝에 우승입니다. 감격이 남달랐을텐데요.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3번 연속 준우승하면서 멘탈붕괴(정신이 나감)가 왔을 정도입니다.그러다가 4번째 도전인 대통령배에서 마침내 정상에 서니 정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게다가 야구 불모지나 다름없는 강원도의 강릉고에서 첫 우승을 이뤄내 더 뿌듯하고 짜릿했죠. 작년에 우승하면 인터뷰하겠다고 했는데 이뤄져 다행입니다.(지난 해 가을 2번 준우승만 한 뒤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정중하게 거절한 바 있다)
=강릉지역 학생 야구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강릉에는 중학교 야구팀이 한 개로 선수들을 외지에서 모아와야 합니다. 1학년때 15명 정도를 모집하는데 10명 이상이 수도권 등에서 온 선수들입니다. 강원도의 다른 곳(춘천, 속초, 원주)도 마찬가지로 선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럼 어떻게 선수들을 수급하나요.
▲전국대회 등 경기를 치르는 것보다 선수들 끌어모으는 것이 더 힘듭니다. 선수가 많은 지역인 수도권에서 중학교 대회가 열리면 3박4일 이상 출장을 옵니다. 모텔을 잡아놓고 3, 4일씩 머무르면서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선수들과 접촉합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잘하는 선수들은 환경이 좋은 서울,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 명문고들이 먼저 스카우트하고 저는 남는 선수들 중에서 인성도 괜찮으면서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합니다. 그렇게 모인 선수들이 현재의 강릉고 선수들입니다. 서울, 인천, 수원, 포항 등 각지역 선수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래도 프로구단 스카우트들 말에 따르면 강릉고는 잘 조련된 팀이라고 하던데요. 비결이 무엇인가요.
▲별거 없습니다. 선수들에게 먼저 예의를 갖출 것을 주문하고 훈련에 충실할 것을 주문합니다. 다른 팀보다 정신력을 강조하며 독하게 훈련을 시키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체벌은 절대 없습니다. 선수들 스스로 목표의식을 갖고 열심히하라고 채찍질합니다. 서울에서 경기할 때면 새벽에 출발하는 등 힘이 듭니다. 그래도 선수들에게 “이것도 훈련”이라며 격려하고 있는데 잘 따라와주고 있습니다.
=이력이 좀 독특합니다. 초중고 감독을 다 역임했고 석사 출신이기도 합니다.
▲고교선수시절(배문고)에 내야수로 성적이 뛰어나지 못해 대학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청룡리틀야구단을 이끌던 이성렬(현 유신고 감독) 선배님이 코치로 지도해보라고 해서 시작한 것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러다 미성초등학교 야구부를 맡게 됐고 군대를 다녀온 이후 이문초등학교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지도자생활을 하게 된거죠. 덕수중에 이어 배재고를 시작으로 덕수고, 신일고를 거쳐 고교감독을 맡은 후 2017년 강릉고까지 오게 됐습니다. 덕수고 감독시절 커가는 딸아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서울산업대(현 과학기술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34세의 나이에 체력장도 보고 시험도 치르느라 힘들었죠. 주위에서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마치라는 바람에 세종대학교 대학원에 진학,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어서 덕수고 감독직을 내려놓고 대학원 졸업을 택했습니다. 중간중간에 1, 2년씩 잠깐 쉰 적은 있지만 운 좋게 37년간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릉고 출신들이 근년 들어 프로 진출 등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인가요.
▲올해 2차 1라운드 지명인 좌완 김진욱(롯데 입단) 등 몇 명씩 나오고 있지만 아직 많은 편은 아닙니다. 대학진학도 많이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지역 명문 공립학교여서 야구선수들도 똑같이 일반학생들과 같이 공부하고 내신 등급을 받고 있어 대학입학에는 힘든 실정입니다. 아무래도 운동선수들이라 내신성적이 처집니다. 그래도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선수들을 프로와 대학에 보내며 전국대회 우승까지 한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강릉고의 지원은 어떻습니까.
▲학교와 동문들의 지원이 좋습니다. 내가 부임한 후 짓기 시작한 고교 최고 수준의 실내연습장이 곧 준공됩니다. 23억원의 건축비가 들어간 것으로 압니다. 실내연습장이 완공되면 훈련 여건이 전보다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오랜 감독생활로 제자들이 많겠습니다. 유명한 선수들이 누가 있나요.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박용택(LG)을 비롯해 이용규, 하주석(이상 한화), 김민성(LG) 등 수두룩합니다. 박용택은 초등학교 감독시절 제자입니다. 스토브리그가 되면 안부전화들도 많이 합니다. 대부분 덕수고, 신일고 시절 제자들이죠. 아마추어에서는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이 제법 됩니다. 운동장에서 상대편 감독으로 만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종종 기억을 못해 미안할 때도 있을 정도로 제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감독생활의 목표가 있다면.
▲지금까지 감독생활을 하면서 환경이 가장 좋은 곳과 가장 열악한 곳을 다 경험했습니다. 주어진 한 해 한 해 최선을 다해 강릉고 야구부를 전국 최고의 명문팀으로 만드는 것에 열성을 다할 작정입니다. 인성과 실력을 갖춘 후진 양성이 최고의 보람이자 목표입니다.
/글.박선양 기자 sun@osen.co.kr /사진.강릉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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