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구 부상 내 잘못, 차라리 잘 다쳤다" 훌훌 털어낸 정은원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0.11.12 05: 32

“어떻게 보면 다친 것이 다행이지 않았나 싶어요.”
한화 3년차 내야수 정은원(20)의 올 시즌은 지난 여름 뜻하지 않은 공 하나에 의해 끝났다. 8월14일 대전 삼성전에서 7회 상대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의 3구째 몸쪽 깊게 들어온 커터에 왼쪽 손목을 맞고 교체됐다. 검진 결과 손목에서 뼛조각이 떨어졌고, 4~6주 재활 소견을 받았다. 
서산으로 가서 재활을 시작했지만 떨어진 뼛조각이 붙는 데 시간이 걸렸다. 팀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재활이 늦춰지는 악재도 있었다. 결국 1군에 복귀하지 못한 채 재활군에서 3년차 시즌을 마감했다. 올 시즌 성적은 79경기 타율 2할4푼8리 63안타 3홈런 29타점 41볼넷 OPS .697. 출루율(.317→.362)이 전년대비 눈에 띄게 올랐으나 지난해까지 빠른 성장세로 기대치가 컸던 만큼 아쉬움 남는 시즌이었다. 

정은원이 홈을 밟은 후 덕아웃에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rumi@osen.co.kr

11일 대전 마무리캠프에서 만난 정은원은 “올해 야구를 못해서 거의 1년 만에 인터뷰를 하는 것 같다”며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도 좋게 생각하려 했다. 안 된 부분을 되짚으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내년을 준비 중이다. 어떻게 보면 다친 것이 다행이지 않나 싶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한다”고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7회말 1사 1루 한화 정은원이 팔에 사구를 맞아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youngrae@osen.co.kr
예측할 수 없는 불의의 사구 부상, 하지만 정은원은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 “준비가 미흡한 시즌이었다. 반성한다. 잘 안 되다 보니 시즌 도중 한 번에 너무 많은 변화를 줬다. 심리적으로 쫓기면서 급해졌다. 다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공이 와서 맞은 게 아니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이었는데 타격 준비 자세부터 밸런스, 타이밍이 전부 늦다 보니 맞았다. 누구 탓할 것 없이 내 잘못이었다”는 게 정은원의 말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제동이 걸린 시즌, 시련의 시기였지만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훌훌 털어냈다. 
사실 타격 슬럼프는 지난해 후반기부터 시작됐다. 첫 풀타임 주전 시즌이라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기술적으로도 오락가락했다. 이 부분에 대해 시즌 전 준비가 부족했다고 인정한 정은원은 “타격시 탑 포지션에서 공을 맞히기까지 스피드가 빠른 게 장점이지만, 그러다 보니 덮어치는 스윙이 많았다. 1~2루 땅볼이 많은 이유였다. 장점과 단점 사이에서 너무 왔다 갔다 했다. 지금 마무리캠프에선 어느 한 쪽으로 크게 치우치지 않고 장점을 유지하되 단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훈련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팀 사정상 부상 전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풀로 뛰었다. 데뷔 후 쉼없이 달려온 정은원에게 부상은 오히려 한걸음 떨어져 몸과 마음 모두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 그 사이 한화 내야에는 노태형, 이도윤, 박정현 등 새로운 선수들이 두각을 보였다. 마냥 자리가 보장되는 게 아니란 것을 느낀 정은원은 “응원하면서도 경쟁심이 생겼다. 그런 게 필요하다. (경쟁자가) 주변에 없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게 팀이 강해지는 방향이다”고 강조했다. 
8회초 무사 1루 한화 정은원이 안타를 때려내고 있다. /youngrae@osen.co.kr
창단 첫 10위로 추락한 한화는 대대적인 팀 쇄신 작업으로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정리했다. 젊은 선수들 중심의 리빌딩으로 노선을 분명히 했고, 정은원이 그 중심에 서야 한다. 1군에도 후배들이 크게 늘어난 정은원은 “나도 아직 어리다. 같은 20대 초중반인 후배들과 큰 차이 없다.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데…”라며 웃은 뒤 “그래도 최대한 후배들과 함께 좋은 분위기 속에서 재미있게 야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선배다운 역할을 다짐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김태균, 정근우 등 대선배들에게도 애틋한 마음을 보였다. 정은원은 “김태균 선배님 은퇴가 실감나지 않는다. 신인 때 바라보던 선배님은 영원히 계실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 은퇴하셨다. 은퇴식할 때 너무 슬플 것 같다”며 “(같은 2루 포지션인) 정근우 선배님에게도 신인 때부터 야구에 대한 마음가짐과 수비 기본을 많이 배웠다. 덕분에 1군에서 큰 실수 없이 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진심을 전했다. /waw@osen.co.kr
경기에 앞서 한화 김태균이 정은원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다.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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