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은퇴에 즈음한 슬픈 말씀들…김태균의 물러남에 부쳐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은퇴에 즈음한 슬픈...
“야구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 왔습니다. 오늘이라는 날은 나의 일생에 있어 가장 슬픈 날입니다....



“야구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 왔습니다. 오늘이라는 날은 나의 일생에 있어 가장 슬픈 날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야구를 해올 수 있어서 대단히 행복했습니다. 위대한 팬 여러분께 인사를 올립니다. 여러분은 나의 생애에 있어 정말로 훌륭한 팬이었습니다.”

1976년 9월 18일 밤, 밀워키 브루어스의 본거지인 밀워키 카운티 구장에는 4만 863명의 관중이 꽉 들어찼다. 메이저리그 최다인 개인 통산 755홈런 기록 보유자인 행크 아론의 은퇴식을 보기 위해 보위 쿤 커미셔너를 비롯해 워렌 스펀,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 등 왕년의 명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론의 은퇴 장면을 지켜본 미키 맨틀은 “아론은 슈퍼스타로서 너무 낮게 평가됐다. 만약 그가 뉴욕 팀에서 플레이를 했다면 윌리 메이스나 나와 동급으로 취급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종의 벽을 넘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론은 그렇게 역사의 갈피로 걸어 들어갔다.

소설가 이외수는 “내게는 타고난 재능으로 고수에 이른 사람보다는 피나는 노력으로 고수에 이른 사람이 더 위대해 보이고, 피나는 노력으로 고수에 이른 사람보다는 그 일에 미쳐 있는 사람이 훨씬 위대해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위대해 보이는 사람은 그 일을 시종일관 즐기고 있는 사람이다.”고 어느 책 머리에 써놓았다.

단순히 일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높은 경지다. 그런 이야말로 진정한 고수(高手)다.

우리 프로야구판의 고수 한 명이 무대 뒤안길로 사라졌다. 떠나는 자의 슬픔과 남은 자의 아쉬움은 예나 이제나 다를 수 없다. 우리네 세상살이에서 가장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가 아마도 정든 일터에서 물러나는 일일 것이다. 승부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할 터.

한화 이글스의 터줏대감 김태균(38)이 결국 은퇴의 길을 택했다.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만, 그 나름의 회한이 없지 않았던 듯하다. 김태균은 10월 22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마저 흘리며 “매년 팬들에게 시즌 전에만 희망을 드렸는데 그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 같다”며 우승 꿈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태균의 은퇴에 즈음해 관전자로서도 아쉬움이 없지 않다. ‘우리네 유명선수들은 왜 ‘물러갈 때를 놓쳐 뒷마무리가 명쾌하지 못할까’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한화 이글스 구단은 김태균의 등 번호를 영구결번하는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연관된 기사에 대한 팬 반응을 보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아마도 김태균이 존재감이 옅어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상 따위로 더욱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데 대한 실망감이 컸던 탓일 것이다.

이승엽 같은 예외적인 존재가 있긴 하지만 이른바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대단한 기록을 남긴 여러 선수의 은퇴 전 마지막 해의 기록을 살펴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뒤끝이 영 개운치 않다. 미련이 남아 미루적거리다가 마지못해 등 떠밀리듯이 물러난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런 점에서 2007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였던 김재현(은퇴 당시 SK 와이번스 소속)의 사례는 귀감이 될만하다. 김재현은 2009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때 “한 시즌만 더 뛰고 은퇴하겠다”고 ‘예고 은퇴’를 선언,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김재현은 예고 대로 은퇴를 하면서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힘 있을 때 좋은 모습으로 은퇴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좋은 기억으로 떠날 수 있는 시점’을 그는 잘 택한 것이다.

이형기 시인은 시 ‘낙화(落花)’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지만, 바라보는 자의 눈길과 당사자의 심정이 일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본프로야구 최초로 개인 통산 3000안타 고지에 올랐던 재일교포 장훈(3085안타) 같은 위대한 선수도 23년간의 선수 생활을 정리하게 됐을 때 “생명이 끊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고 했지만, 동시에 “끝없는 전쟁터에서 가까스로 해방됐다”며 홀가분한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그만큼 괴로운 일이다. 어찌 됐든, 청춘을 불살랐던 이들의 고단한 여정에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일 일이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사진/ 한화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이 22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가진 은퇴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OSEN=대전, 민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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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3 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