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사 재발견](10) ‘해방 뉴-쓰’에 등장한 광복 후 첫 ‘도시대항 야구대회’ 영상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0.09.01 11: 11

2020년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난 지 75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주진숙, 이하 영상자료원)은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 한상언)와 공동으로 지난 7월 7일부터 한국영화박물관 신규 기획전시의 일환으로 ‘혼돈의 시간 엇갈린 행로: 해방 공간의 영화인들’을 주제로 내세워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온라인 전시회를 통해 희귀한 자료를 대거 공개했다.
영상자료원이 공개한 자료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해방 뉴-쓰’(이하 해방뉴스로 표기함)에 들어 있는 야구 관련 영상 두 점이다. 지난 2005년에 자료를 입수했던 영상자료원의 ‘해방뉴스’가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일반에 공개되면서 해방 공간의 첫머리에 열렸던 야구대회의 모습을 비록 그 한 조각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롭다.
1945년 10월 5일에 창간한 자유신문사는 1946년 3월 18일 조선야구협회가 정식 결성된 뒤 그해에 곧바로 4도시대항 야구대회를 비롯해 전국도시대항 야구대회, 조·미(朝·美)대항 야구대회, 전국대학전문야구선수권대회, 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현 청룡기고교야구대회 전신)를 잇달아 개최, 해방공간에서 우리나라 야구 재건에 앞장을 섰던 진보 성향의 언론사였다.
그 중심인물은 야구에 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이정순 자유신문사 편집위원장이었다. 6·25 민족상잔 전쟁의 와중에 납북됐던 그는 자유신문사가 주도해 야구대회를 새로 꾸려나가는 데 큰 동력을 불어 넣었다.
이번에 확인해본 ‘해방뉴스’ 속의 야구대회 소식은 제1회전국도시대항 야구대회와 조·미(朝·美)대항야구대회 두 편이다.
야구 뉴스는 여러 정치, 사회, 문화 뉴스 뒤에 편성된 것으로 그 분량은 짧다. ‘해방뉴스 00호’에 들어 있는 제1회전국도시대항 야구대회는 2분48초, ‘해방뉴스 특보’에 나오는 조·미(朝·美)대항야구대회는 1분4초 분량이다.
도시대항 야구대회는 아나운서의 “전국 야구팬의 인기를 총 집중하고 있던 제1회전국도시대항야구대회는 조선야구협회와 자유신문사 공동 주최로 11도시의 야구팀이 참가해 6월 7일 서울운동장에서 화려한 막을 열었다. 그날 첫 여름 좋은 날씨, 드디어 정각 12시 반에 200여 명의 선수들이 각 팀 주장 손에 들린 태극기를 선두로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야구계가 왜정 밑에서 발달이 저해되고 최근 6, 7년 동안 그마저 중단된 것이 이제 해방 이후 얼마 안 되어 이같이 화려하게 부흥됐다”는 설명을 곁들여 도시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든 선수들의 입장식 광경, 경기하는 장면, 관중석 모습에다 대회 개막전인 개성(開城)과 대전(大田)팀의 스코어보드에 점수가 적힌 판을 거는 영상 따위로 구성돼 있다.
도시대항 야구대회는 개회선언, 애국가 합창, 서상국 대회장(조선야구협회 회장)의 식사, 부산팀 주장 이상문의 “승부를 초월하여 정정당당히 싸우겠다”는 선수 선서에 이어 유억겸 문교부장의 축사, 오후 1시 뉴먼 미군정청 공보부장의 시구식으로 막을 올렸다. 그 대회에 참가했던 팀은 경성(서울)을 비롯해 부산, 군산, 전주, 마산, 광주, 대구, 대전, 인천, 개성 등 11도시 선발팀이었다. 6월 7일부터 경성운동장에서 시작, 10일까지 토너먼트(맞붙기)로 열렸던 이 대회 첫 우승의 영광은 경성을 8-1로 누른 대구에 돌아갔다.
‘해방뉴스 특보’의 조·미(朝·美)대항야구대회 뉴스는 미군정청 하지 중장의 축사와 시구식, 경기 장면 등으로 편성 돼 있다. 뉴스에는 아나운서가 “8·15 평화 해방 기념 1주년 행사의 하나로 조선의 정예선수로 짜진 전조선군과 미군의 최강팀 24군이 용호상박 열전을 벌였는데 결국 미군팀이 4-1로 우승했다”고 언급했다.
1946년 8월 17일치 『자유신문』에 실려 있는 하지 중장의 축사는 “나는 조선의 청년아동들이 여러 가지 경기를 잘하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 조선인은 경기의 천질을 타고났다. 따라서 조선의 운동경기의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힘의 원천은 국민체육에 있으니 체육경기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기 바란다”는 덕담이 주된 내용이다.
이 경기는 『자유신문』 1946년 8월 18일치 기사를 확인한 결과 실제로는 3-4로 조선대표팀이 1점차로 졌다. 영상은 9회 말에 조선팀이 2점을 뽑은 사실이 누락 돼 있는 것이다.
『한국야구사』(1999년 한국야구위원회와 대한야구협회가 공동 발행)에 따르면 “해방 1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하나로 자유신문사가 마련, 1946년 8월16일부터 3일 동안 경성운동장에서 열려 메인게임인 미24군단전은 조선대표팀이 3-4로 졌고, 번외 경기인 미31부대에는 3-1, 미 308부대에는 10-6으로 이겼다. 이 대회는 한국학생야구 발전에 큰 몫을 했고, 첫 대표팀 구성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미(朝·美)대항야구대회는 미24군단 본부 정훈부 잉거프리센 소령이 이정순 자유신문사 편집위원장에게 “만약 조선군이 점수를 낸다면 1점당 볼 10다스를 주고, 조선군이 이긴다면 배트 50자루와 볼 50다스를 주겠다”는 당근을 약속받은 일화가 있다. 야구용품 부족에 허덕였던 당시 조선대표팀은 3점을 낸 덕분에 가뭄에 단비 같은 볼 30다스를 받아냈다는 얘기다.
‘해방뉴스’ 해방 직후부터 적산 조선영화사가 제작했던 뉴스 영화로 1945년 이후 1947년까지 14편(특보 포함)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재일 동포들에게 상영하기 위해 일본의 민중영화주식회사에 제공한 1946년 작 ‘해방 뉴-쓰’(특2, 3호, 4), ‘해방 뉴-쓰’(특보) 등 모두 4편을 한국영상자료원이 2005년에 발굴, 소장하고 있다.
한상언 영화연구소 소장은 ‘해방뉴스’에 대해 “영화 상영 전에 상영되었던 뉴스영화로 첫 상영은 1945년 8월15일부터 10월까지 있었던 일을 뉴스로 제작해 내보냈고, 조선영화사가 적산기업이었기에 미군정청의 허가를 얻어 제작된 해방뉴스는 북한지역을 포함하여 일본과 미국 등지의 동포들에게 고국의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보내졌으며 1947년 초쯤에 제작이 중단되었다.”고 보았다
‘해방뉴스’에 실린 야구대회의 풍경은 현재로선 해방공간의 유일한 영상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영상자료/ 한국영상자료원, 한상언영화연구소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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