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서지』 21호, 백석 시인의 가명 ‘리식’을 발굴, 수록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0.08.14 12: 37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습습한 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여름철이 되면 으레 떠오르는 시다. 그 ‘무엇’은 국수다. 메밀로 된 ‘찬 국수(냉면)’가 뜨거운 여름날에는 제격이다. ‘한국의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백석(1912~1996)의 ‘국수’는 일제 강점기의 문예잡지 『문장』 폐간호(1941년 4월)에 실렸다. 백석의 이 시는 북녘의 한겨울밤에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는’ 국수를 정감 어린 시어로 풀어놓은 것이다.
백석 시인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뒤에 북녘 땅에 그대로 눌러앉아 1960년대에는 러시아 시 번역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석 시인이 그 같은 번역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명을 썼고, 몇 연구자들에 의해 그 실태가 시나브로 밝혀지고 있다.
최근 출간된 『근대서지』 2020년 상반기호(통권 제21호. 소명출판)에 백석 시인이 ‘리식’이라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가명(필명, 이명)으로 번역과 창작 활동도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운 주막』 등 시집을 펴낸 박태일 시인은 올해 들어 「재북 시기 백석의 번역 문학 연구」라는 주목할 만한 논문을 발표한데 이어 이번 『근대서지』 2020년 상반기호에 실은 ‘리식이 백석이다’라는 기고 글을 통해 백석이 북한에서 발표했던 번역시 가운데 ‘리식’이라는 가명을 쓴 것이 5편임을 새롭게 발굴, 학계에 알린 것이다.
10년의 연륜을 쌓은 근대서지학회(회장 오영식)가 소명출판사의 후원으로 펴내고 있는 『근대서지』 는 문학은 물론 예술체육문화와 북한서지, 매체와 번역 관련 서지 등 분야를 세분화해 실증적인 자료(사료)를 바탕으로 학계의 오류를 바로잡아 왔다.
이번 『근대서지』 2020년 상반기호에도 다양한 자료를 발굴, 상세하고 적절한 해설로 수집가와 연구자의 가교 노릇을 하며 한국 근대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먼저 문원란에는 도종환, 박형준, 손택수, 이도윤, 박성모 시인의 시편이 실렸고, 방종현, 이재욱, 송지영, 이봉구의 산문을 찾아내 재수록 했다. 더욱이 경성대학 교수 방종현의 「울릉도답사기(鬱陵島踏査記)-독도(獨島)의 하루」와 소설가 이봉구의 「힌 바람벽에 기대어」는 읽을거리로서 충분한 재미와 의미를 던져준다.
문학서지란에서는 다양한 문학 서지를 새로 발굴, 소개했다. 주송파의 『사랑의 설야』, 일봉의 『청춘의 애상』, 저자 미상의 『무정』 같은 딱지본 연구(고려대 교수)와 김기림 시인의 새로운 자료로서 그림, 사진과 함께한 삼중 텍스트인 「삼박자행각」과 노래체 양식 텍스트인 「체신가사(遞信歌詞)」를 발굴, 광운대 조영복 교수가 소개했다.
예술체육문화란에서는 동아일보사 주최 연극경연대회, ‘한국영화40년기념 대전시회’ 팸플릿, 『최신가요곡집』, 『경찰신조』의 표지화, 『조선체육계』 및 기생연구의 권위자인 신현규 중앙대교수가 조선 기생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찾아내 풀이해 놓았다.
북한서지란에서는 임순득 발굴 작품 「금목걸이」, 한설야의 오체르크 전투실기 『섬멸』, 재일교포시집 『어머니-조국』, 『오늘의 유고슬라비야』의 해제를 수록했다. 또한 북한에 소개된 소비에트 미술과 조각가 지창룡에 대한 소개를 통해 근대 북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매체서지란에는 근대에 간행된 다양한 잡지에 대한 해제와 자료를 실었다. 『조선통신』, 『선데이서울』, 『새싹』과 『아동』, 『새동무』, 『신소년』를 각각 수록하고 목차 등 서지사항을 정리, 수록했다. 그 가운데 1960년대 대중주간지로 알려져 있는 『선데이서울』을 유춘동, 김대범 두 강원대 교수가 나서서 서지작업을 해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1968년 9월 22일에 창간한 『선데이서울』은 1991년 12월 29일에 폐간될 때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성인용 주간지로 ‘선정, 음란, 외설’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황색잡지였다.
우선 1968~1969년 발행분의 목차와 서지 정리를 꾀한 유춘동 교수는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던 『선데이서울』이 최근 일반 대중이나 연구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면서 “이 잡지에 실린 1970~1980년대 대중문화의 다양한 면모가 사료로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고 그 시대상황과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
번역서지란에서는 일본에서 발표된 귀중한 글들을 만날 수 있다. 회월(懷月) 박영희가 포함된 「소련 탈주병을 둘러싼 좌담회」를 번역 포함된 재미있는 좌담회를 번역, 소개하는 한편, 재일문학가 김달수가 쓴 김태준 관련된 글을 전문 게재했다. 김소운의 『신아동』 편모와 이상(李箱)의 삽화 역시 새로운 자료로 독자들을 찾아나섰다.
논문란에서는 근대를 밝히는 다양한 연구자의 논문이 실렸다. 특히 해방 전 김수영의 행적을 밝혀 주는 김수영의 산문 「어머니를 찾아 북만으로」를 발굴, 수록해 김수영 연구에 빛을 더했다는 평을 들었다.
[OSEN=홍윤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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