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류대환 KBO 총장, “강정호 측이 규약을 악용한 것” 발언의 속뜻은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0.05.27 08: 41

“이럴 줄 알았다.” (인터넷 아이디 hainn)
많은 야구팬이 KBO가 결정한 전직 메이저리거 강정호(33)의 ‘KBO 리그 복귀신청(임의탈퇴 해제)’에 대한 5월 25일 상벌위원회 결과를 보고 분노의 목소리와 비난을 쏟아냈다. 범법자가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의 중징계를 바랐던 많은 이들이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경징계(1년 유기 실격과 봉사활동 300시간)에 그치자 질타를 퍼부은 것은 당연한 노릇일 터. 음주운전 한 번으로 불명예 은퇴의 길을 선택했던 박한이(전 삼성 라이온즈)의 사례 등을 들추어낸 누리꾼들은 ‘물 징계, 솜방망이 징계’로 평가 절하했다.
그만큼 이번 징계 결과가 일반인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국민 법 감정과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 셈이다.

그렇다면, KBO 상벌위원회는 왜 이 같은 결론을 내렸을까.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법이 다 그렇다. 끌어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끌어서 적용’이라는 것은 KBO 규약상 ‘소급 적용’을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KBO는 강정호가 한국 내에서 2016년 12월 ‘음주 뺑소니 사고’로 큰 파문을 일으킨 뒤 2018년 9월 11일에 규약 제151조 ‘품위 손상 행위’ 조항을 개정했다. 개정 이전에는 ‘기타 인종 차별, 가정폭력, 성폭력, 음주운전, 도박, 도핑 등 경기 외적인 행위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 실격처분, 직무정지, 참가활동정지, 출장정지, 제재금 부과 또는 경고 처분 등’으로 돼 있던 것을(제151조 3항) 사안별로 세분화하고 벌칙을 강화했다.
그에 따라 강정호같이 음주운전 3회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3년 이상 유기 실격’을 처분할 수 있었다. 강정호가 그 사건으로 인한 재판 과정에서 이미 두 차례 음주운전(2009년, 2011년)을 한 전력이 들통나 법원이 삼진아웃제를 적용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이다. 강정호가 음주운전 사건을 일으킨 시점이 2016년 12월인데다 당시 그의 소속이 미국 프로야구 피츠버그 소속이었기 때문에 KBO가 규약을 거슬러 징계를 내리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류대환 사무총장은 “(소급적용이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강정호 측 변호인도 알았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임의탈퇴 신청은 선수가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소속 구단과 계약을 하고 난 뒤에 하는 것인데. (강정호 측이) 변칙 플레이를 한 것이다. 나쁘게 보면 악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소속 구단인 키움 히어로즈와 (계약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망설였던 것 같고, 규약상 세게 못 때릴 거다, 그걸 가지고 구단과 협상하자는 게 (강정호) 에이전트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강정호 사건 이후에 KBO가 강화된 규약을 만들어 그 잣대를 들이대기가 힘들었다.”(류대환 사무총장)
류대환 사무총장은 그에 덧붙여 “2016년도 (강정호) 사건은 누가 봐도 나쁜 행태였다. 그렇지만 당시 KBO 소속 선수도 아니었고 감정적으로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직접 죄를 추궁할 수 없었다. 상벌위원회 논리는 어제의 죄를 오늘의 법으로 재단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일반 형법도 그런데, 야구만 그럴 수 있겠는가. 자칫 분쟁의 소지를 만들어줄 여지가 있다”고 길게 설명했다.
야구팬들의 들끓는 감정은 충분히 이해 하나 KBO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호였다.
강정호에 대한 상벌위원회는 많은 이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사회 정서상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범법(위법) 행위를 저지를 자에 대한 KBO의 처분이 어떻게 내려지는가에 매스컴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상벌위를 앞두고 공공연하게 ‘강정호의 1년 자격정지’ 징계설이 나돌았다. 일부 매체는 징계 결과를 예단하는 보도까지 했다.  그것은 기껏해야 ‘1년 자격정지’ 밖에 더 때리겠느냐는 추정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KBO의 징계가 법(규약) 테두리가 아닌 정실로 흐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쳇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였다. 공교롭게도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
상벌위가 ‘소급 적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지만, 이는 강정호 측이 KBO를 잘 아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김선웅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 대응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KBO 규약의 ‘시간 차 허점’을 교묘히 파고든 ‘성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전히 큰 의문이 남는다. ‘과연 KBO 상벌위원회는 예전의 잣대로 1년 유기 실격을 내린 것이 타당했는가, 또는 소급 적용 불가의 법 논리에 함몰된 나머지 다른 여지를 살피지 못하지 않았는가’하는 점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앞부분에서 언급했듯이 2018년 개정 이전의 ‘KBO 규약 제151조 3항’에는 음주운전 따위의 징계에 대해 ‘실격처분’ 등으로 추상적으로 규정해놓았다. 오히려 이 조항을 포괄적으로 유추해석 한다면, 영구제명, 장기 실격처분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야구계 일각의 의견도 있다.
황석영 작가는 “근대와 현대는 기억과 망각의 갈등”이라는 절묘한 진단을 내린 바 있다.
강정호 사건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나쁜 선례로 남게 됐다. 설사 그가 앞으로 KBO 리그에 복귀해 제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두더라도 한국 야구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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