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에게 2019년이란..28년 꽃봉오리 드디어 틔우다 [인터뷰 종합]
OSEN 심언경 기자
발행 2019.12.04 15: 50

배우 이정은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다. 28년간 품고 있던 가능성을 드디어 크게 터트리며, 최고의 한 해 2019년을 맞았다. 
이정은은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KBS 2TV '동백꽃 필 무렵'(연출 차영훈, 극본 임상춘) 종영 기념 라운드 인터뷰를 가졌다.
'동백꽃 필 무렵'은 편견에 갇힌 맹수 동백(공효진)과 그를 깨우는 촌므파탈 황용식(강하늘)의 생활밀착형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달 21일 최고 시청률 23.8%(닐슨코리아 기준)을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배우 이정은. /jpnews@osen.co.kr

이정은은 종영 소감으로 "그간 '가장 벌 받는 기분으로 살았다'는 정숙이로 살았다. 사실 미혼모나 자식을 버리는 부모의 이야기는 기사로만 접했지 않나. 이러한 대목을 정숙이라는 인물로 재조명해서 다른 시각을 갖게 해준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또 동백이와 필구(김강훈)라는 가족이 생기고 정숙이가 좀 더 행복해진 모습을 저를 통해 보여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고 밝혔다.
극 중 이정은은 동백의 엄마 정숙 역을 맡았다. 정숙은  극심한 생활고로 동백을 고아원에 맡긴 후에도 곁을 맴돌며, 위험으로부터 딸을 지켜내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숙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를 향한 시청자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치매 환자가 돼서 어릴 적 버렸던 딸을 찾아온 정숙은 만인의 공노를 살 만했다. 뿐만 아니라 정숙의 의뭉스러운 면모는 연쇄살인범 까불이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전작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연기했던 엄복순 이미지 역시 한몫 했다. 이에 이정은은 "처음에는 '전작만 없으면 더 착하게 보일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모정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재미를 이끄는 축이 되더라. 나쁘지 않은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진실이 밝혀진다고 생각했다. 후반부에 진실이 밝혀지면서 동정표를 얻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저도 부모가 아이를 버렸다는 기사를 보면 '그러면 안됐지'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연의 주인공인 정숙을 연기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정숙은 보편적으로 소비되는 엄마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당장 극 중 황용식(강하늘)의 엄마 곽덕순(고두심)과도 완전히 결이 다르다. 이에 이정은은 "결혼을 안 해서 일반적인 엄마의 길을 걸어가는 배우랑 다른 폭이 나오는 것 같다. 그동안 자식들에게 못되게 하는 엄마 역도 좀 했다. 여러 느낌의 엄마를 해보니까 재밌다"라고 말했다.
이정은은 10살 어린 공효진과 모녀 호흡을 맞췄다. 얼마 나지 않는 나이 차에 진득한 모녀 케미를 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냐는 질문에 이정은은 "제가 엄마 말투로 연기를 한다 해도 몇 살 더 위까지 만들어낼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솔직하게 하려고 했다. 기름기를 좀 빼자 싶었다. (공효진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상대방은 천운과 같다고 하지 않나. 그 친구로 인해 제 연기가 좀 결정됐다. 정말 잘 받아줬다"고 답했다.
이정은은 공효진을 "정말 존경하는 배우"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저랑 공효진 씨가 사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둘 다 막 '좋다' '존경한다'라는 표현을 잘 안 한다. 말 수도 많지 않다. 그냥 서로 보는 거다. 우리의 극중 관계가 그랬다"며 "효진 씨가 되게 털털하다. 촬영장에서 부담을 주는 게 없다. '언니, 이렇게 해볼까요?'라고 제안도 많이 한다. 함께 액션 신을 하게 됐을 때도 서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주고 받았다. 동료로서 너무 좋았다"라고 전했다. 
'동백꽃 필 무렵'이 많은 이들의 인생드라마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주옥 같은 대사들이다. 정숙 역시 여러 명대사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눈시울을 촉촉히 적셨다.
이정은은 가장 인상깊은 명대사를 묻는 말에 "'내가 널 위해서 모든 걸 할 수 있다' '엄마는 자식 해칠 놈은 금방 알아본다', 이 두 대목이 정말 좋았다. 동백이가 7년 3개월 얘기할 때 적금 탄 것 같았다고 말했던 것도 정숙이한테는 그렇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정숙의 모정이 극대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동백의 목숨을 위협하는 까불이가 있어서다. 이정은은 까불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극 중반에 범인이 잡혔다. 그런데 이상했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흥식이(이규성)가 까불이인 것으로 밝혀졌을 때 '역시 정숙이의 촉이 맞았다'라고 생각했다. 이규성을 볼 때마다 '너지?'라고 했었다. 나중에 좀 통쾌했다"라고 얘기했다.
정숙은 동백을 지키기 위해 까불이와 직접 대면하기도 했다. 딸을 위해서라면 거리낄 게 없는, 아주 강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이에 이정은은 "까불이를 직접 찾아갈 거라 생각을 못했다. 까불이를 직접 찾아가서 '까불지 말라'고 하지 않나. 직접 도전적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쇼킹이었다. 멋진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엄마의 측면이 보여서 좋았다"라고 전했다.
이정은에게 2019년은 최고의 한 해였다. 올해 초 JTBC '눈이 부시게'를 시작으로, OCN '타인은 지옥이다', 영화 '기생충', KBS 2TV '동백꽃 필 무렵'까지 거치며 명실상부 명품 조연으로 거듭났다. 이처럼 빛을 보기까지 무려 2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토록 활약을 펼친 이정은이지만, 그의 목표는 연말 '연기대상' 수상이 아닌 시상이었다. 이정은은 "시상이 얼마나 부담이 없고 기분 좋은 일인가. 받을 때는 부담스럽다. 카메라가 얼굴을 잡을 때 몸을 둘 데를 모르겠다. 상을 받고 우는 수상자들을 보면 시청자 된 기분이어서 시상을 하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동백꽃'이 싹쓸이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타인은 지옥이다' 가서는 '타인은 지옥이다'가 다 받았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정은은 자신을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해도, 스스로는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정은은 "저는 달라진 게 없다. 칸에 간 게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들 현장에서 편안한 연기가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것 같다. 더 많이 주목받을 수 있는 역할도 많이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윤발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전 재산을 기부하셨지 않나. 또 주윤발처럼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사람들과 흔쾌히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 배우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배우로서 더 큰 욕심이 있을 법도 하지만, 이정은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정은은 "지금 정도면 만족한다. 주어지는 대로 연기를 할 생각이다. 대신 풍요로운 역이 좋다. 그 사람을 보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는 (저에 대한 관심도가) 내려가지 않을까. 그러면 저는 관심 밖에 있더라도 관심 받을 수 있도록 또 열심히 작품에 임하면 된다. 이 부분으로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notglasses@osen.co.kr
[사진]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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