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상' 김영직 휘문고 감독 “우직하지만 원칙대로 가르치겠다”
OSEN 박선양 기자
발행 2019.10.29 13: 24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만큼 우직한 소신이 묻어나온다. 연고도 없는 지역에 가서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키며 소신있는 야구를 펼쳐 인정을 받은데 이어 모교로 오자마자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오랫동안 프로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다가 뒤늦게 아마추어 고교야구에서 후학들을 키우고 있는 김영직(59) 휘문고 감독의 이야기이다. 지난 8월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2년만에 우승을 차지, 아마야구 지도자 데뷔 첫 정상을 밟은 김영직 감독을 만나보았다.
-아마야구 지도자로서 처음 전국대회 정상에 오른 소감은
◀지난 해에는 포철고를 이끌며 전국대회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는데 올해는 모교에 오자마자 우승을 차지해 정말 기뻤다. 프로야구에서 오랫동안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아마야구 감독을 맡은 후 처음 우승이고 더욱이 모교를 정상으로 이끈 것이 뿌듯하다. 휘문고는 지난 겨울 감독이 교체되며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학부모들과 대화를 통해 잘 극복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

-아마야구 지도자를 하게 된 계기는
◀15년간 LG 트윈스에서 지도자로 있다가 2012년 시즌 후 물러난 뒤 가족이 있던 캐나다로 떠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2015년 지인으로부터 포철고 감독직을 맡아보라는 권유가 있어 연고도 없는 포항을 가게 됐다. 당시 포철고는 선수 숫자도 많지 않았고 팀도 어수선했지만 1학년 선수들이 똘망똘망해서 지도하는 보람이 생겼다. 가자마자 선수들과 열심히해서 2015년 청룡기 4강에 올랐고 작년에는 청룡기에서 준우승까지 했다. 포철고는 2013년 포철공고 야구부를 승계한 자사고로 선수층이 얕았지만 경북권에서는 주말리그 우승은 물론 라이벌 경주고와의 경기에서도 많이 이기는 등 선수들이 잘해줬다.
-연고도 없는 포항에서 지도자로서 힘들었을텐데….
◀학교재단과 경북야구협회에서 많이 도와줬다. 하지만 때때로 보이지 않는 주변의 압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럴 때마다 원칙을 지키자는 마음을 다잡고 팀을 운영했다. 기숙사 사감처럼 합숙소에서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똘똘 뭉쳐서 열심히 한 덕분에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 원칙을 지키며 버틴 덕에 3년여를 잘 보내고 온 것 같다. 술은 원래 잘 못하고 담배도 끊고 골프도 안치며 오로지 선수들 지도에만 전념하며 원칙대로 행동했다. 경기 중 불합리한 사항이 생기면 감독으로서 앞장서서 올바로 잡는 등 원칙을 지켰다.
-프로와 아마야구 지도자의 차이라면
◀프로야구 코치는 선수 지도에만 전념하며 선수들 성장을 돕는 게 임무로 다른 것은 크게 신경쓸 것이 없다. 이에 비해 아마야구 감독은 여러가지 상황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힘든 자리이다. 선수들 지도하며 성장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나 대학 진출에 도움을 줘야하는 등 고려해야할 점이 많다. 전국대회에서 학교 성적도 좋게 올리면서 선수들 개인성적까지 챙겨줘야 한다. 선수들 진로에도 도움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은 대학에서는 전형위원회에서 성적만 보고 선수를 뽑는 시스템이 돼 예전보다는 수월하다. 그래도 선수들 훈련시키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과 진학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아마야구 지도자로서 원칙은 무엇인가
◀프로에서 코치를 할 때부터 아마야구 지도자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술도 잘못하고 정치도 못하지만 팀을 운영하는데 원칙은 갖고 있다. 팀운영에 있어서 학교나 학부모 등이 간섭하는 것은 내가 앞장서서 막는다. 선수들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불편불만사항은 감독인 나를 통해서 해결하도록 선수들에게 강력하게 당부하고 있다. 예전처럼 상하급생간의 다툼은 철저하게 막고 있다. 동계훈련 등과 관련해서도 학부모들에게 맡기는 등 돈과 관련해서는 학교를 통해서 원리원칙대로 처리하고 있다.
팀을 운영하는 데에도 실력위주의 기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대학진학이 걸려 있는 3학년생 위주로 출전 라인업을 짜지만 비는 자리에는 1, 2학년 중에서 잘하는 선수 위주로 기용한다. 2학년이라고 무조건 출장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또 인성을 강조한다. 기량이 우수해도 생활태도에서 문제가 있으면 당장 내일 경기가 있어도 훈련 안시키고 공부하라고 한다. 반성하고 돌아와야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지방에 있다가 모교인 서울 휘문고로 와서 좋아진 것은
◀휘문고는 자사고로 다른 서울 학교보다는 선수단 규모가 작다. 현재 36명으로 많지 않다. 그래도 야구단이 훈련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 학교의 지원은 만족할만하다. 선수들도 알아서 훈련을 잘한다. 외부에서 웨이트훈련을 스스로 하는 등 지방보다는 야구환경이 좋다. 기술적인 부분을 외부에서 개인지도를 받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설이 부족한 학교보다는 밖에서 하고 오는 것은 좋다. 선수 스카우트할 때 동문회에서는 지원해주겠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다. 잘하는 선수를 장학금을 주고 데려오면 선수간 위화감 문제도 생길 수 있고 중학교때 좀 못해도 고교와서 지도를 받고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가 크고 뿌듯하다.
-지금까지 선수와 지도자로 야구를 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아무래도 1990년 LG 창단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 함께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해 야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고 했는데 당시 백인천 감독님이 1년만 나하고 더해보자고 해서 남았는데 한국시리즈서 인상적인 활약을 하며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지도자로서 이번 봉황대기서 우승하며 처음 정상을 밟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순간이 됐다.
###김영직 감독 프로필
지금은 없어진 유한중 1학년 때 야구가 좋아서 글러브와 방망이를 잡았다. 그리고 휘문고와 영남대를 거쳐서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입단했다. 1987년 MBC청룡에 지명돼 교사와 프로를 놓고 고민하다가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다. 프로 선수시절 대스타는 아니었지만 ‘영감’이라는 별명처럼 필요할 때마다 한 방씩을 해주며 1995년까지 LG에서 외야수로 뛰다가 1997년부터 LG 코치로 활동했다.
/사진.OSEN, 휘문고 제공
[이 기사는 월간지인 'OSEN+' 10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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