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사 재발견](6)1933년 경북 청도군에서 발견된 ‘야구노래’

[한국야구사 재발견](6)1933년 경북...


2018년 11월 21일, 경매업체인 코베이의 ‘삶의 흔적 경매전’에 창가(구한말, 일제 강점기 노래)를 베껴 모아놓은 『창가장(唱歌帳)』 한 권이 출품됐다.

유인본(油印本=등사본)인 그 『창가장』은 총 47쪽이고 한글과 한자로 표기돼 있으며 낡은 한지 표지의 세로 18, 가로 13.5cm 크기다. 표지에는 ‘계유년(癸酉年) 정월(正月) 중순(中旬)’ ‘청도군(淸道郡) 화양면(華陽面) 서상동(西上洞) 김필수(金弼壽)’라는 필사(筆寫)가 있다.

추측컨대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에 사는 ‘김필수’라는 사람이 여러 창가를 모아 꾸며놓은 창가집으로 보인다. 모두 48곡의 노래 가사가 수록돼 있는 그 『창가장』에는 ‘권학가’, ‘학우가’, ‘일요일가’ 외에도 운동과 연관이 있는 ‘야구가’ ‘풑으볼(풋볼) 응원가’ 등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 수록돼 있는 ‘야구가’의 가사는 3절과 후렴으로 구성돼 있다. 그 가사는 이렇다.

一. 장엄하고 활발스런 야구수들아

공부할 때 공부하야 지식 넓히고

운동할 때 운동하야 체육 힘써서

심신을 근강켸하세

二. 장하도다 우리학도 오날날이여

천지는 천낭하고 일광 조흔데

뺃도를 둘러메고 들에 나가니

흉금이 상쾌로다

三. 활발스런 야구수는 쫙 늘러스고

구경하는 모든 사람 다 모힌 중에

뺃으로 갈겨보자 앞에 오는 뽈

오버다 센터로 홈인

야구수들아 야구수들아 모든 기운을 다 모하서/ 철퇴갓치 튼튼한 뺃도로 치는 뽈 오버다 센터로 홈인(야구수=야구선수, 조흔데=좋은데, 천낭=청량, 뺃도-배트, 근강=건강, 늘러스고=늘어서고)


이 『창가장』에 들어 있는 ‘야구가’는 우리나라 양악의 선구자였던 이상준(李尙俊. 1884~1948)이 1918년에 펴낸 『최신창가집(最新唱歌集)』에 수록돼 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보인다. 비록 표기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가사가 똑 같다. 『최신창가집』의 ‘야구가(野球歌)’는 ‘야구’를 소재로 삼아 ‘노래(창가)’로 작곡한 것으로 악보와 함께 실려 있다.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출신으로 음악 교육자였던 이상준의 『최신창가집』에는 ‘야구가’를 포함해 ‘운동가(運動歌)’ 등 모두 35편의 창가(唱歌)가 실려 있다. 이 창가집에 일제의 식민지 교육에 따른 일본의 기미가요 따위의 ‘의식화(儀式化)’ 된 일본어 노래와 더불어 ‘야구가’도 끼어 있다. 2절과 후렴으로 구성된 ‘야구가’와 달리 청도군 김필수의 『창가장』에는 3절까지 돼 있다.

김필수라는 인물이 어떤 경위로 이 같은 『창가장』을 만들어놓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도회지가 아닌 시골에서 이 같은 ‘야구가’를 채집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야구라는 외래 운동이 그 때만하더라도 이미 조선반도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증거로 삼을 수 있겠다.

김필수 『창가장』에는 학문을 권유하는 ‘권학가(勸學歌)’도 실려 있는데 참고삼아 가사의 앞부분을 소개하면 이렇다.

‘공부할 날 만타하고 밋지마시오/무정세월 물결갓치 지나가네/청춘에 학문을 힘쓰지 안코/백발에 한탄을 어이하리오’

현재까지 확인된 한국 최초의 야구노래(혹은 응원가)는 ‘야구단운동가(野毬團運動歌)’이다. 『황성신문(皇城新聞)』은 1909년 7월22일치 기사에서 모두 5절로 된 ‘야구단운동가’를 소개하고 있다. 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1909년 7월 24일치에 ‘소년남자가(少年男子歌)’를 게재했는데, 노래 가사는 ‘야구단운동가’와 똑 같다.

‘야구단운동가’ 이후 1916년에 난파(蘭坡) 홍영후(洪永厚)가 작곡, 『통속창가집(通俗唱歌集)』에 실은 ‘야구전(野球戰)’이 실질적인 야구응원가로는 최초의 것으로 보인다.

이상준(李尙俊)이 1918년에 펴낸 『최신창가집(最新唱歌集)』에 들어 있는 ‘야구가(野球歌)’는 홍난파의 ‘야구전’에 이어 나온 것이다.

1절

장엄하고 활발스런 야구수들아 공부할 때 공부하야 지식 넓히고 운동할 때 운동하야 체육 힘써서 심신을 건강케 하세.

(후렴)야구수들아 야구수들아 모든 기운을 다 모아서 철퇴 같이 튼튼한 배트로 치는 볼 오버 다 센터로 홈인

2절

장하도다 우리 학도 오늘 날이여 천지는 청량하고 일광 좋은데 배트를 둘러메고 들에 나가니 흉금이 상쾌로다

(이 가사는 이유선이 1968년에 발간한 『한국양악80년사(韓國洋樂八十年史)』에 악보와 함께 실려 있는 것을 전재한 것이다.)


휘문과 보성고보에서 음악교사 노릇도 했던 이상준은 비단 ‘야구가’ 뿐만 아니라 ‘휘문야구응원가’, ‘보성야구응원가’도 작곡한 것으로 전해진다.

야구노래는 8 ․ 15 해방 이후 1946년에 자유신문사가 주최한 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청룡기고교야구선수권대회 전신) 때 월북 성악가인 박은용(朴殷用)이 작곡한 ‘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가(全國中等學校野球選手權大會會歌)’가 그 맥을 이어 대회 개회식 때 이화여고 합창단이 부른 바 있다. 특정한 대회를 위해 야구 노래를 작곡한 것은 물론 박은용이 처음이다.

1904년 이 땅에 야구가 들어온 이래 야구응원가로 불려온 야구노래는 야구단운동가(野毬團運動歌)→야구전(野球戰)→야구가(野球歌)→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회가(全國中等學校野球選手權大會會歌) 등으로 그 흐름이 확인된다.

근대서지학회 오영식 회장이 공개했던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가’는 가로 11cm, 세로 15.5cm 크기의 한 장짜리 유인물에 1절부터 3절까지의 가사와 악보가 실려 있다.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는 현재 조선일보사가 주최하고 있는 청룡기쟁탈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의 전신으로 8· 15 해방 직후인 1946년 9월에 자유신문사의 주최로 첫 대회가 열렸다. 자유신문사는 1946년 8월 5일에 대회 개최 요강을 발표했고, 1946년 9월 11일 경성운동장(서울운동장)에서 역사적인 개막식을 열었다. 첫 대회 참가학교는 24개교, 참가선수는 528명이었다. 첫 대회 우승기(청룡기)는 대구상업의 품으로 돌아갔다.

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 위) 경북 청도군 김필수가 작성한 『창가장』과 거기에 들어 있는 ‘야구가’

(사진 아래) 이상준 작곡 ‘야구가’ 가사와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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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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