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야구계의 아픈 손’ 선동렬의 결단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야구계의 아픈 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경기는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정말로 위대한 선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경기는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정말로 위대한 선수가 됐다는 뿌듯함, 나라의 명예가 내 어깨에 걸려 있다는 부담감, 그 복잡한 감정들이 벅차게 나의 온몸을 휘감았다.”

이 글은 선동렬(55) 전 야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처음으로 대표선수로 발탁됐던 감회를 『정면으로 승부한다』(1996년 샘터사)는 책에 실어놓은 것이다.

선동렬 전 감독은 고려대 1학년 때인 1981년 7월, 미국 오하이오주 뉴 워크에서 열렸던 제1회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 대표로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선 전 감독은 그 대회 결승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탈삼진 11개를 기록하는 등 역투를 거듭해 한국이 3-1로 이겨 우승을 거두는데 큰 공을 세우고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선동렬은 그 후 한국야구의 최고 투수로 우뚝 섰다. 그의 야구항로를 보노라면, ‘결단’으로 점철돼 있다.

1985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과 ‘매국노’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1996년 일본 무대 진출을 관철시켜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 한 것, 주위의 만류에도 1999년에 은퇴를 단행 한 것, 2014년에 기아 타이거즈 감독 연장이 결정 났음에도 구설수에 오르자 자리를 박차고 나선 것, 그리고 올해 국가대표팀 감독을 용퇴한 것 등 선동렬 전 감독이 그의 야구 인생의 기로에서 내린 ‘결단’은 결코 구차하지 않았다. 자신의 걷는 길이 바르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정면 돌파’ 해 온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표 팀 감독 도중하차는 그의 말대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불찰은 있었겠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과감한 행보였다. 아시안게임 야구대표선수 선발 파동은 어찌 보면 그동안 야구계가 사로잡혀 있었던 ‘관행과 구단 안배’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오지환이라는 이름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 덫에 선동렬 감독이 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른바 고액 몸값의 야구선수들은 축구와는 달리 야구국가대표 선수라는 자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 풍조가 나타난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점에서 선동렬 감독이 미필자 위주로 대표 팀을 꾸리려고 했던 심정은 이해가 간다.

선동렬 전 감독과 관련, 여태껏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2015년 2월 23일, 선동렬 전 감독은 평생 아끼고 간직해온 ‘빛나는 훈장들’을 몽땅 KBO에 기증했다. 그날 그는 30년 야구 세월의 영광과 애환이 서려 있는 각종 기념상패와 훈장, 메달은 물론 글러브, 스파이크 등 야구용품, 앨범, 챔피언반지 등 작은 트럭 한 대 분량의 기념품을 KBO 야구박물관추진위원회에 건네줬다.

선동렬 전 감독이 기증한 기념품 등은 질과 양 면에서 개인박물관을 꾸려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한 귀중한 것들이었다. 그날 필자는 현장에서 그 광경을 낱낱이 목격했다.

서울 서초동 그의 자택에는 방 한 칸에 조명등까지 설치하고 진열장 4개에 장식해놓은 기념품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개중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낡고 떨어진 것도 있었지만 부인 김현미 씨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돼 있었다. 특히 20여개의 사진 앨범은 1973년 광주 송정리 동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 1999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마침표를 찍은 ‘선동렬 선수’의 자취가 연대별, 팀별로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동렬 전 감독은 그 때 자신의 애장품을 야구박물관추진위원회에 아낌없이 넘겨주면서 “내가 계속 가지고 있으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박물관에다 기증, 많은 분들이 보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 기증하게 됐다”면서 “집 사람이 좀 서운해 한다”고 웃었다. 한 쪽 벽면에 일부러 짜놓은 진열장 4개에 가득 차 있던 기념품은 지극히 사적인 가족관계 앨범 등을 빼곤 모조리 박물관추진위원회로 넘어갔다.

평생 간직해온,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기념물품들을 선뜻 내어준 선동렬 전 감독의 표정은 의외로 홀가분해 보였다. 그야말로 ‘이타행(利他行)’의 표본이었다.

그런 그가 아시안게임 우승의 기쁨은 고사하고 대놓고 평가절하 하는 시선에 맞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토로하며 물러난 것은 그 자신은 물론 야구계에도 큰 아픔이다. 그처럼 나아감과 물러남이 분명한 야구인도 드물다. 앞으로 야구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그는 제1호로 헌액 될 인물이다. 여지없이 깎인 그의 마음의 상처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이며 구겨질 대로 구겨진 그의 명예와 자존심은 누가 회복시켜줄 것인가.

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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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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