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사 재발견](4)가장 오래된 한국야구경기 사진

[한국야구사 재발견](4)가장 오래된 한국야구경기 사진
흔히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 ‘최초’나 ‘최고(最古)’로 학술적인 규명을 하는...


흔히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 ‘최초’나 ‘최고(最古)’로 학술적인 규명을 하는 것은 실증적인 자료가 없으면 단정하기 어렵다. 한국야구사에서도 여태껏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래된 사진’ 등도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다.

조선 최초의 경기나 최초의 운동경기 기사 따위는 아직까지 그 실체를 확실하게 짚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구체적인 기록이나 자료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실물이 뒷받침 돼야하는 사진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지난 9월 9일, 경매업체인 코베이의 ‘삶의 흔적 경매전’에 이른바 ‘조선최초의 야구경기’ 사진이 등장했다. 아쉽게도 실물은 아니고 일본어로 된 한 잡지에 실린 것이다.

1941년 4월 1일 일본 도쿄 조선문화사가 발행한 『조선화보(朝鮮畫報)』 양춘특별호(陽春特別號)가 바로 그것이다. 잡지의 발행 겸 편집인은 일제 강점기와 1950년대에 언론인으로 필명을 날렸던 김을한(金乙漢. 1905~1992)이다. 이 잡지의 시작가는 150만 원이었지만 유찰됐다.

이 『조선화보(朝鮮畫報)』에는 ‘추억의 사진(‘思ひ出の寫眞)’이라는 제목 아래 두 장의 야구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장은 ‘조선 최초의 야구 경기-짚신을 신고 베이스볼(草鞋を履いてベ-スボ-ル)’이라는 설명을 붙인 야구경기 장면이고, 다른 한 장은 ‘베이브 루스와 이영민(李榮敏)’의 모습이 담겨 있다.

‘조선 최초의 야구 사진’이라고 단정한 사진은 황성기독청년회(서울 YMCA)와 관립한성고등학교(현 경기고 전신)의 경기 사진이다. 사진 속 등장인물의 자세와 위치, 주변 관중들의 모습과 더불어 뒤편 그물망(백스톱)까지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에 ‘빨래 방망이 비슷한’ 배트를 들고 서 있는 타자는 한성학교의 이영복,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포수는 YMCA의 허성, 포수 뒤편에 뒷짐을 지고 있는 심판 같은 사람은 한성학교에 야구부를 만든 일본인 체육교사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실명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이 사진이 야구계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인데다 여러 문헌에도 실린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사진이 나타난 문헌마다 가장 중요한 경기 날짜가 모두 다르게 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사진은 가장 먼저 한국 체육기자의 선구자이자 1936년 동아일보 기자시절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우승 사진 일장기 말살의거’의 주역인 이길용(1899~1950?) 이 쓴 『동아일보』 1930년 4월 2일치 ‘조선야구사’ 연재 1회의 배경 사진으로 나타난다.

그 다음으로는 『신동아』 1934년 3월호에 실린 화보특집 ‘사진으로 보는 조선 스포츠 발달사’에 같은 사진이 들어 있다. 그 잡지에는 월남 이상재의 시구(1926년) 장면 등 야구사진 4장을 포함 모두 8장의 스포츠 사진을 실었는데, ‘이길용 씨 소장’으로 명기돼 있다. 그로 미루어 그 사진들은 이길용이 간직하고 있던 것들이고, 당연히 YMCA-한성학교의 야구사진도 그가 제공한 것이다.

『신동아』의 YMCA-한성학교의 야구사진에는 “짚신으로 발 들메를 하고 행전 치고 뺏 치는 모양-일·한 합병 전인 융희(隆熙) 3년(1909년)에 황성기독청년회와 관립한성고등학교의 야구전 광경이다. 심판은 한성고등학교 체육선생이고 수비는 청년회, 공격은 고교의 타자 모션을 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길용의 자료를 바탕으로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8.15 해방 뒤인 1957년에 출간된 『체육대감-한국운동경기총람』 (연합신문 기자 김창문 편찬)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 사진 설명에 “1905년 황성기청팀과 한성고교와의 야구전 –타자가 고교선수, 심판은 일인 교사”라고 경기 연도가 1905년으로 돼 있다.

그런데, 『경기고 70년사』 (1970년 발행)에는 그와 달리 “1910년 2월 16일 본교대 황성기청. 타자가 본교의 이영복”이라는 사진 설명이 들어 있다. 연도가 1910년으로 앞선 것들과 다르다.

앞서 소개한 『조선화보』에는 대한제국 마지막 연호인 융희(隆熙) 3年으로 명기 돼 있고 괄호 안에 지금으로부터 33년 전(今年より三十三年前)이라는 연도가 나온다. 그 잡지가 1941년에 발행된 것이므로 환산하면 1909년이다. ‘융희 3년’이라는 표기는 이길용의 『신동아』 잡지에 설명해 놓은 것과 같다.

현재로선 그 사진의 연도 진위를 확인할 길이 막연하다. 그저 『경기고 70년사』에 나온 그대로 ‘1910년 2월 16일, 관립한성고등학교-황성기독청년회 야구경기’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답답하다. 어찌됐든 이 사진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사진으로 ‘추정’ 하는 것은 무리가 없겠다.

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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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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