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스포츠(야구) 판에 남아 있는 왜색 용어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스포츠(야구) 판에 남아...
KBO는 2012년 3월 6일 실행위원회(단장 모임)를 열고 S(스트라이크)-B(볼)-O(아웃)를 국제기준에 맞춰...


KBO는 2012년 3월 6일 실행위원회(단장 모임)를 열고 S(스트라이크)-B(볼)-O(아웃)를 국제기준에 맞춰 B-S-O로 변경했다. S-B-O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30년 동안 익숙해 졌던 일본식 전광판 표기였다.

우리네 일상 속에서 가장 자주, 흔히 듣게 되는 말은 입장(たちば), 역할(やくわり) 따위의 왜(倭)말이다.

야나부 아키라(柳父章)가 지은 『번역어 성립 사정』(서혜영 옮김)은 ‘사회(Society), 개인(Individual), 근대(Modern), 미(美. Beauty), 연애(Love), 존재(Being), 자연(Nature), 권리(Right), 자유(Freedom), 그, 그녀(He, She) 같은 번역된, 학문과 사상의 기본 용어들이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어떠한 지적인 고민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그 후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이끌어왔는가’를 해설해놓은 책이다.

이 용어들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땅에도 그대로 이입이 돼 우리네 학문 속으로 녹아들었고 정착됐다. 사실 야구(野球)라는 말 자체도 일본어이다. 야구처럼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도저히 손을 쓰기 어려운, 대체하기 힘든 일본어들이 수두룩하다.

비단 이런 용어 뿐 만 아니라 한 예로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말 가운데 일본어 ‘달인(達人)’은 여러 한글사전에도 버젓이 올라 있다.

‘생활의 달인’, ‘타격의 달인’ 따위로도 쓰이는 ‘달인’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1.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 ‘2.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 으로 풀이해 놓았다. 그런데 이 달인의 뜻풀이는 일본국어사전 『다이지센(大辭泉)』 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이다. (이윤옥의 『사쿠라 훈민정음』)

명색이 나라말과 글을 바르게 이끌어야할 국립국어원 조차 이 꼴이다. 왜말의 찌꺼기는 우리네 삶 속에 깊고 넓게 똬리를 틀고 있다.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형편무인지경’이다. 더군다나 스포츠계에는 왜말의 찌꺼기가 그 어느 곳보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채 활개치고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도중 조재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이 국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스포츠 판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일본어 잔재에 대해 새삼스레 문제 제기를 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지적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 보도(2018년 8월 22일)에 따르면 조재기 이사장은 일본식 영어인 ‘파이팅(Fighting)’이나 심지어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이름에 붙어 있는 ‘국민’이라는 말조차 일제 강점기 ‘황국신민(皇國臣民)’에서 온 말로 추방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피력했다고 한다.

체육기자연맹(회장 정희돈)은 지난 11월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바람직한 스포츠 용어 정착을 위한 미디어 포럼’을 열고 스포츠 기사에 녹아든 일본식 표현 바꾸기‘를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인 바 있다.

이참에 한국 스포츠계에 번져 있는 일본어 찌꺼기를 살펴보는 것은 새삼스럽지만, 그런대로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야구용어를 중심으로 체육계에서 척결, 청산하지 못한 대표적인 일본어를 색출해내 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경기장에서 가장 흔하게, 그리고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바로 ‘시합(試合, しあい)’과 ‘파이팅(Fighting)’일 것이다. 이 말은 아주 유감스럽게도 지도자나 선수, 관계자들이 입에 달고 산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다.

근년 들어 ‘시합’이라는 표현은 각 종 매스컴에서 추방돼 보기 어렵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신문 지면이나 방송 화면에 가끔 나타난다. 일선 기자들의 노력으로 체육기사에서는 거의 사라진 시합은 게임이나 경기로 바꾸어 부르는 게 좋겠다.

‘파이팅’은 일본식 조어인 ‘화이토(fight)’에서 연유된,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용어다. 우리말로 좋게 해석하자면, ‘잘 해보자’, ‘힘내라’ 쯤이 되겠지만 외국 선수들에게는 종 주먹을 쥐고 ‘한 번 붙어볼래’하는 식으로 을러대는 거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 우리말 ‘으랏차차’로 바꾸어 부른다면 어떨까.

북한의 체육용어 가운데 잽(Jab)→앞 손, 스트레이트(Straight)→뻗어치기, 훅(Hook)→휘어치기, 어퍼컷(Uppercut)→올려치기로 부르는 복싱용어나 모서리차기(코너 킥), 튄 공 잡기(리바운드), 가로채기(인터셉트) 같은 축구, 농구용어는 앞으로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순우리말로 통일하기에 안성맞춤형 용어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북한의 야구용어는 스트라이크→정확한 공, 볼→부정확한 공, 더블플레이→이중실격, 번트→살짝 치기, 야간경기→등불게임, 주자→진격수 등으로 부른다.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해마다 2월부터 각 구단들은 일제히 해외에서 스프링 트레이닝을 갖는다. 이 때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전지훈련이라는 말이다.

‘전지훈련(轉地訓鍊)’의 ‘전지(轉地. てんち)’는 일본어다. 『중종실록』에는 ‘피접(避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피접’은 요양 또는 병 치료를 위해 지낼 곳을 옮기는 것이라는 뜻인데, 어려운 표현이어서인지 번역하는 과정에서 ‘전지(轉地)’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전지요양(轉地療養)으로 쓰인다. 현지훈련 등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다.(이윤옥의 『사쿠라 훈민정음』)

계주(繼走. けいそう)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육상이나 수영, 빙상 경기의 한 갈래로 쓰인다. 이 말은 순우리말 이어달리기로 하면 된다.

흔히 ‘기라성(綺羅星) 같은’ 따위로 잘 쓰는 ‘기라성’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이라는 뜻으로 신분이 높거나 권력이나 명예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로 풀이해놓았다. 국립국어원은 ‘빛나는 별’로 이 말의 순화를 권유했지만 제대로 번역된 말이 아니다.

일본말 ‘기라(綺羅)’는 의미 없는 말로 ‘반짝반짝(きらきら)’에 별(星)을 붙여놓은 것이다. ‘쟁쟁한’, 또는 ‘한다하는’ 정도로 고쳐 쓰면 되겠다. 소설가 황석영의 단편소설 ‘장사의 꿈’에 보면 씨름판을 묘사하는 대목에 “아라랏차차차……. 그 고함의 신명나고 소름끼치게 즐거운 울림이 귀에 쟁쟁하구만”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국위선양(國威宣揚)’이라는 기사도 툭하면 볼 수 있다. 이 말은 ‘일본(메이지정권)을 세계 만방에 알리자’는 뜻을 지녔다. ‘국위(國威)’는 ‘나라의 권력이나 위력’, ‘선양(宣揚)’은 ‘명성이나 권위 따위를 널리 떨치게 함’이라는 뜻이다. 그 배경을 안다면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

‘석패(惜敗)’는 『표준국어대사전』에 ‘경기나 경쟁에서 약간의 점수 차이로 아깝게 짐’이라고 했으나 이는 일본 『다이지센』에 나오는‘석패(せきはい)’의 풀이를 그대로 옮겨놓은데 지나지 않는다. 우리말로 ‘아깝게 지다’로 하면 된다.

‘대미(大尾)’를 장식하다는 말 역시 일본어다. ‘대미(大尾. たいび)’는 최후, 결국, 끝, 꼬리의 뜻인데 일본어 사전 풀이에 따르면 ‘잡힌 물고기가 죽기 직전에 큰 꼬리를 파닥거리는 데서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굳이 한자로 바꾸자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말로 ‘마무리를 잘하다’는 정도로 순화시켜야 한다.

체육기사에서 숱하게 목격할 수 있는 용어 ‘고참(古參)’은 일본 한자말이다. 이 역시 『표준국어대사전』은 일본 사전의 풀이를 고스란히 베껴 따르고 있다. 군국주의 일본의 대표적인 군사용어 중 하나로 ‘선임’으로 바꾸면 되겠다.

앞서 예로 들었던 ‘입장(たちば)’은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만든 말로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하면 ‘선 자리’ 로 풀 수 있는데, 일본사람들이 한자(立場)로 표기는 하되 그것을 음독(音讀)하지 않고 훈독(訓讀) ‘たちば’로 읽는 용어다. 우리말 ‘처지’로 충분히 뜻이 통하는데 구태여 ‘입장, 입장’할 필요가 있을까. 처지, 태도, 견해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역할(やくわり)’은 ‘맡은 구실이나 임무, 소임’ 등으로 바꾸면 된다. ‘노릇(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할 일’이라는 훌륭한 우리말이 있다.

한국과 일본에 ‘베이스볼(BASEBALL)’을 전파한 것은, 당연하지만 미국인이었다. 한반도에 야구를 처음으로 전파한 것은 필립 질레트라는 미국인 선교사였지만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본격적인 보급과 확산에는 재일 한국유학생들과 일본인들이 기여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야구(野球)’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의 ‘조어(造語)’인 것이다.

한국도 처음에는 ‘베이스볼(뻬쓰-뽈 등 ㅂ, ㅅ 쌍자음 표기)’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일본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野球’를 받아들여 점차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야구도입 초창기에 『황성신문』 이나 『대한매일신보』에는 ‘野球’가 아닌 ‘打球(타구)’나 ‘野毬(야구), ‘擊球(격구)’, ‘擲球(척구)’라는 표기로 기사를 실었다. 3가지 표기 모두 ‘baseball’의 특징을 잘 나타낸 음미할 만한 ‘조어’였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 잘못사용해온 야구용어는 숱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캐치볼’, ‘토스배팅’, ‘프리배팅’, ‘시트배팅’, ‘노크’ 따위가 있다.

‘캐치볼’은 ‘playing catch’, ‘long toss’가 바른 표현으로 우리말 ‘길게 던지기’가 차라리 낫다. ‘토스배팅’은 ‘pepper’가 정확한 표현이다. ‘pepper(퍼붓다, 연타하다)’는 야수들이 무리지어 하는 훈련이다. ‘프리배팅’은 ‘batting practice’, 약칭해서 ‘B.P’라고 보통 쓴다. ‘시트배팅’은 ‘simulated game’을 말한다.

잘못된 일본식 야구용어 표현의 압권은 ‘노크(knock)’다. ‘노크(knock)’는 ‘펑고(fungo)’가 올바른 표현이다. ‘치다, 때리다’의 뜻인 노크가 일본에서 그대로 들어와 한국야구 판에서도 긴 세월 질긴 생명력을 이어갔다.

1997년 한국담배인삼공사가 ‘겟투(GET2)’라는 담배를 내놓은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이름이 (잘못된 일본식) 야구용어와 같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겟투(Get two)’라고 하면 ‘두 명을 죽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 말은 제대로 된 야구용어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더블플레이(double play)’를 비틀어서 작명한 것이다. 더블플레이는 ‘수비 팀이 연결된 동작으로 두 명의 공격 팀 선수를 한꺼번에 아웃 처리하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 야구 판에 왜말의 침투는 심각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야구용어가 일본식 사이비 영어였다. 이는 나이터(nighter→night game), 포볼(fourball→walk 또는 base on balls), 데드볼(死球, deadball→hit by a pitch), 홈인(home in→came home), 스리번트(three bunt→bunt on two strike), 터치아웃(touch out→tag out), 인정2루타(entitled two base hit→automatic double) 따위로 알 수 있다.

일제 야구용어 가운데 놀랄만한 것은 ‘고로(ゴロ)’다. 땅볼을 뜻하는 ‘그라운더(grounder)’에서 따온 국적불명의 이 용어는 웬만한 야구전문가 조차 그 출처를 알기 어려운 이상한 용어다.

KBO는 2005년 말부터 활동해온 야구용어위원회가 2006년 4월에 야구용어 개선안을 내놓는 등 나름대로 야구용어 순화작업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때 개정된 용어 가운데 ‘포볼’은 ‘볼넷’으로, ‘데드볼’은 ‘몸에 맞는 공’, ‘플라이 볼’은 ‘뜬공’, ‘스퀴즈(squeeze) 플레이’는 ‘짜내기’, ‘백스톱’은 ‘뒤 그물’, ‘헬멧’은 ‘안전모’, ‘방어율’은 ‘평균자책점’으로 그럴싸하게 작명해 발표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는 매스컴의 호응을 얻어 현재도 잘 유통되고 있으나 흐지부지 사장된 것도 있다.

그동안 KBO 운영, 규칙부장을 역임했던 고 조해연(1928~2014) 선생 같은 이들이 야구용어 바로잡기와 순화에 노력을 기울인 업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해연 선생은 2007년에 『우리말 야구용어 풀이』라는 책도 펴냈다. 이 책은 투수와 포수, 공격과 타격, 수비, 일반 용어로 나누어 각고의 힘을 기울인 책으로 야구 판에서 잘못 쓰였거나 전해 내려온 용어를 거의 빠짐없이 다루었다.

아래에 참고삼아 나열해 놓은 책들은 왜곡된 일본식 스포츠용어 표현을 바로잡기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박숙희, 『반드시 바꿔 써야할 우리말 속 일본말』, 1991년, 한울림

안정효, 『가짜영어 사전』, 2000년, 현암사

문화관광부, 『운동경기 용어 순화집』, 2001년

조해연, 『우리말 야구용어 풀이』, 2007년, 지성사

이윤옥, 『사쿠라 훈민정음』, 2010년, 인물과 사상사

이윤옥, 『오염된 국어사전』, 2013년, 인물과 사상사

黑川省三 外, 『野球の英語 小辭典』 , 2002년 創元社

柳父章, 『번역어 성립 사정』, 서혜영 옮김, 2003년, 일빛,

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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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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