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가고시마, 김태우 기자] 마산 용마고를 졸업한 하재훈(28·SK)은 메이저리그(MLB)에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순조롭게 단계를 밟아가며 트리플A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MLB의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하재훈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첫 아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 출산 과정에서 통역도 없이 병원을 왔다 갔다 했다. 영어도 잘 못하던 시기였는데 힘들었다”고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도와줄 사람조차 없는 미국에서의 시간은 차라리 생존과의 싸움이었다. 이처럼 자신이 어느 한곳에 정착을 하지 못하면서, 하재훈은 가족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럴까. 현재 하재훈을 움직이게 하는 단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바로 ‘가족’이다.
그랬던 하재훈이 드디어 가족 외에 정착할 곳 하나를 더 찾았다. 지난 9월 열린 신인드래프트에서 SK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돌고 돌아 다시 한국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SK의 가고시마 마무리캠프 명단에 합류하는 등 구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한 관계자는 “내년에는 1군 중간에서 뛸 수 있는 투수다. 장기적으로는 마무리까지 가능한 재능”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염경엽 감독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오랜 좌절을 겪은 하재훈은 성숙해진 선수로 돌아왔다. 내년 즉시 전력감으로 뽑힘에도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고 이야기한다. 대개 욕심이 날 법도 한 상황이지만, 하재훈은 많은 것을 내려놓은 채 캠프를 보내고 있다. 하재훈은 이에 대해 “지금껏 이렇게도 해봤고, 저렇게도 해봤다.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라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조급해서 그렇게 됐구나’는 생각이 들더라. 이제 입단을 했고, 조급함이 없으니까 여유가 생겼다”고 웃었다.
그렇지만 하재훈의 재능을 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번 마무리캠프 최고 투수라는 평가가 자자하다. 김경태 SK 퓨처스팀 투수코치는 “확실히 재능이 있다. 공을 때릴 때 손이 빨라 체감적인 구위가 더 좋다”면서 “불펜에서 던졌음에도 벌써 최고 149㎞가 나온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더 빠른 공이 가능할 것이다. 손 감각도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투수진의 분위기메이커 몫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흐뭇함도 이어진다.
야수 생활을 접고 이제는 투수에 전념하고 있는 하재훈은 “뭔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오래간만에 단체운동과 강훈련을 하니 힘든 부분도 있지만, 체력이 올라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해야 할 것을 너무 빨리 적응해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을 정도”라면서 “하다보면 될 것 같다, 혹은 안 될 것 같다는 촉감이 오지 않나. 될 것 같다는 감이 온 것 같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투수로 새 인생을 시작하는 만큼 불안감도 있기는 하다. 야수와는 달리 투수는 아직 많이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 끝에 어떤 이미지가 있을지는 하재훈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천천히 가겠다는 게 하재훈의 굳은 각오다. 하재훈은 “키킹에서 스트라이드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것들은 많이 연습하고 있다”면서도 “여기서 뭘 완성시킬 마음은 없다. 조급하면 뭔가 문제가 생긴다. 안 되더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재훈은 인터뷰 내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웃는다. 하재훈은 “미국에서는 1년이면 1년 안에 성과를 내야 했다. 시간이 참 짧았다”고 했다. 이제는 좀 더 안정적인 여건에서 야구를 할 수 있는 만큼 기초공사를 탄탄히 한다는 생각이다. 하재훈은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말에 “그래도 FA 한 번은 해보고 은퇴하고 싶다”고 미소를 드러냈다. 자신보다는 가족들의 행복이 그 이유임은 분명해 보였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