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ERA 1위’ 운명을 개척하는 문학 거주자들

[김태우의 SK랩북] ‘ERA 1위’ 운명을...
“그런 기억은 엄청나게 많죠”


“그런 기억은 엄청나게 많죠”

SK 에이스 김광현(30)은 적어도 인천SK행복드림구장(이하 문학구장)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투수다. 2007년 KBO 리그에 데뷔한 이래 문학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리그 최정상급 성적을 냈다. KBO 통산 248경기에서 112승을 따냈고, 그 중 61승을 문학과 함께 했다.

작은 규격의 홈구장에서 쌓은 성과라 더 값지다. “김광현의 성적을 다른 투수들과 동일한 잣대에서 비교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김광현조차 “경기장 때문에 손해를 본 타구들이 많다”고 껄껄 웃는다. 좌우 95m, 중앙 120m의 규격을 가진 문학구장은 필연적으로 투수들의 무덤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게다가 문학구장은 파울지역이 넓은 편은 아니다. 불펜이 경기장으로 조금 들어와 있는 구조로, 불펜에 떨어지는 홈런 타구도 수두룩하다. 이 홈런들은 사실 비거리 100m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관중시설 개편으로 우중간 담장 너머에는 관중석까지 들어왔다. 예전에는 넘어가지 않을 공들이 관중석으로 쏙쏙 들어간다. SK 투수들은 그 구장을 집으로 삼는다는 선천적인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학을 홈으로 쓴다는 숙명

두산과 LG를 거친 좌완 셋업맨 신재웅은 극단적인 경험을 한 선수다. 리그에서 가장 규격이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다 졸지에 좌우 펜스까지의 거리가 가장 짧은 문학으로 이사를 왔다. 신재웅은 “사실 원정차 문학에 몇 경기 올 때는 구장 규격을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홈에서 72경기를 뛰면 확실히 다르다. 어이없게 넘어가는 것들이 꽤 된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SK 투수들은 구장 규격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한 투수는 “타자들이 잠실에 있다가 여기에 오면 리틀야구장에 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타자들에게 물어보면 더 확실하다”고 농담을 섞었다. 투수들은 “분명히 의식되는 것이 있다. 특히 주자가 있을 때 큰 것을 맞으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가 심하다”면서 “SK에서 투수로 뛴다는 것은 그런 것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SK의 1군 투수코치로 부임한 손혁 코치 또한 팀 합류 당시부터 선수들의 이런 스트레스를 대번에 느꼈다고 말한다. 손 코치는 “낮게 던져야 한다는, 장타를 허용하면 안 된다는 잠재의식들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신인 때부터 얻어맞으며 경험으로 쌓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SK에서 현역 생활을 하며 투수들의 공과 느낌을 한몸에 받았던 박경완 배터리코치도 “투수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한 것은 사실”이라고 공감한다.

그런데 그런 SK 마운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SK는 10일 현재 4.35의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 LG(4.38)와 근소한 차이로 격전을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3위 한화(4.71)나 리그 평균(4.91)과의 격차는 꽤 크다. 당장 지난해 SK의 팀 평균자책점은 5.02였다. 단순히 김광현이나 앙헬 산체스의 가세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발전이다. 구위가 좋아졌다기보다는, 선수들의 달라진 의식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공격적으로, 더 공격적으로

SK 마운드의 세부 지표를 볼 때 눈에 띄는 것은 탈삼진/볼넷(K/BB) 비율이다. 인플레이가 된 타구는 이미 투수의 손을 떠난 것으로 운이 많이 작용한다. 하지만 탈삼진과 볼넷은 투수의 능력에서 좌우된다. SK의 지난해 K/BB는 1.95로 리그 9위였다. 탈삼진이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볼넷이 많았다. 하지만 올해 K/BB는 2.96으로 독보적인 리그 선두다. 맞더라도 시원시원하게 던지는 것은 분명하다.

장타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낮게, 그리고 스트라이크존에 걸치게 승부해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투수들이 이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어렵게 승부하다보니 볼넷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역시 심리적인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손 코치의 진단이었다. 손 코치의 마운드 개편은 모든 것이 그 움츠려든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부터 시작됐다.

손 코치는 “1점은 언제든지 줘도 된다고 말한다. 우리 타선이 강한 편이라 역전만 당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고 항상 격려한다”면서 “선수들이 작은 구장이라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공격적으로 던지는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 운이 조금 좋은 것도 있지만, 유리한 카운트에서 피해가지 않고 가장 자신 있는 공들을 던지고 있다. 확실히 템포가 빨라졌고, 선수들이 공격적으로 던진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투수와 포수 사이의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도 무시할 수 없다. 손 코치는 “올해 투수들의 성적이 나아진 것은 이재원의 공이 크다. 원바운드 공을 블로킹으로 다 막아주고 있다. 투수들도 사인에 고개를 흔들지 않는다. 재원이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배터리 간의 믿음이 생기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박 코치 또한 “사실 문학구장에서는 투수들이 허탈해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 설사 그것이 투수의 실투라고 하더라도, 그럴 때마다 올라가서 ‘내가 잘못 리드했다’고 말해주는 것도 문학을 쓰는 포수의 덕목이다. 투수들의 심리를 엄마처럼 보듬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재원이 그런 측면에서 많이 좋아졌다”면서 “투수리드도 많이 좋아져 믿고 맡긴다. 경기 막판에 던지지 말아야 할 코스 정도만 벤치에서 지시하는 수준”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학 거주자들의 성장은 진행 중

“펜스를 조금 뒤로 밀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타 구단 관계자들이 SK의 홈런포를 보면서 농담 삼아 던지는 말이다. 하지만 SK는 계획이 없다. 기술적으로 쉽지 않을뿐더러, 이 구장을 보고 ‘홈런구단 프로젝트’라는 승부수까지 건 판에 바꿀 이유가 없다. 문학구장이 낙후돼 새 구장으로 이전할 먼 미래까지, SK 투수들은 구장 규격과 계속 싸워야 한다.

구단도 장기적인 관점을 생각하고 있다. 자신 있게 던져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는 것이 첫째라면, 되도록 땅볼을 유도할 수 있는 구종을 던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아직은 이론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투심패스트볼이나 컷패스트볼에 관심을 가지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몸으로 느낀 위기의식은 생존을 위한 발버둥으로 이어진다.


구장마다 모양새가 천차만별인 메이저리그(MLB)에서 감독 생활을 한 트레이 힐만 SK 감독도 고개를 끄덕인다. 힐만 감독은 “팬웨이파크(보스턴 홈구장)나 양키스타디움(뉴욕 양키스 홈구장)은 우측 담장 쪽으로 넘어가는 홈런이 많다. 반대로 미닛메이드파크(휴스턴 홈구장)는 좌측이 짧다”면서 “물론 환경을 신경 쓰지 않는 구단도 있지만, 어떤 구단들은 특정구장에서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어떤 구종을 던져야 하는지에 대해 마이너리그 때부터 교육을 한다”고 설명했다.

힐만 감독은 “결국 몸쪽 승부가 잘 되어야 한다. 투수들은 몸쪽 공을 잘 던지면 타자들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를 많이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손혁 코치도 고민이 크다. 손 코치는 “이론적으로는 투심패스트볼처럼 땅볼을 유도할 수 있는 구종을 많이 던져야 한다. 하지만 요즘 추세와는 또 다른 점이 있다”고 넌지시 고민을 털어놨다. 퓨처스팀 관계자들도 “투수의 유형에 따라 달라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손 코치는 “요즘은 타자들이 발사각을 많이 신경을 쓰는 추세다. 때문에 어퍼스윙까지는 아니더라도 방망이를 들어 치는 타격을 한다”면서 “이런 스타일에는 가운데에서 떨어지는 공보다는 하이패스트볼이나 커브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패스트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힐만 감독이나 손 코치가 모두 고개를 끄떡인다. 손 코치는 “직구로 타자와 정면으로 붙을 수 있는 능력이 기본”이라고 했다.

구단 기조도 이에 맞추고 있다. 염경엽 단장은 부임 이래 팀을 ‘남자의 팀’으로 만들고 있다. 불같은 강속구와 호쾌한 홈런포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선수 육성이나 신인지명 등 여러 가지 기조에서 ‘빠른 공’을 강조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 현재 SK의 1군 마운드 구성을 보면 거의 대다수가 145㎞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선수들이다. 운명을 개척하려는 문학 거주자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OSEN 페이스북에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클릭!!!]
2018-05-11 13:59
이전기사간편보기 다음기사간편보기

Oh! 모션

Live 실시간 속보

OSEN 포토 슬라이드

HOT NEWS

OSEN과 커피한잔

OSEN Fo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