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미완의 질주’ SK, 막연한 기대를 경계하라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10.07 06: 05

“5위 싸움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시즌 전 기자가 구단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말이다. 활자 그대로 본다면, 양자의 말은 같았다. 그러나 뉘앙스는 미묘하게 달랐다. 구단 관계자들은 “5위가 가능한 싸움”에 은근한 악센트가 찍혀 있었다. 기자는 “5위는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점에서 말꼬리가 흐릿했다. 이제 그 간극의 결론을 내리자면 구단이 옳았고 기자가 틀렸다. SK는 5위를 했다. 주위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절반의 성공’이라는 식상한 수식어를 또 호출한다.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업의 끝자락인 2012년 이후 SK는 단 한 번도 5할 이상의 승률이 없었다. 그런데 전반적인 기대치가 떨어져 있었던 올해 단숨에 5할을 돌파했다. ‘위닝팀’으로 돌아온 것은 분명 큰 소득이다. 별다를 것이 없었던 전력 보강, 어쩌면 에이스 김광현의 팔꿈치 수술 여파로 약해진 전력으로 전년보다 훨씬 더 나은 성적을 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팀 전체적으로도 자신감을 찾은 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위닝팀 복귀’ 팀 질주의 발판을 놓다
“감독 하나의 힘으로 팀 전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사례는 없다. 다만 감독이 팀의 전력을 다 활용하지 못하는 일은 아주 많다”. 야구계의 오랜 격언이다. 트레이 힐만 감독도 이 격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년 총액 160만 달러를 받는 힐만 감독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진 전력을 극대화했다. 부문마다 조금씩 다른 평가는 가능하나 전반적인 측면에서 까먹지는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그 차이가 곧 마지막까지 5위 싸움을 벌인 세 팀의 차이였다.
충격요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팀 분위기를 바꿨다.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안정적이고, 점진적이었다. 연착륙에 성공한 비결이다. 선수단 구성과 기용부터 그랬다. 누가 봐도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에서 베테랑들을 벼랑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반대로 필요한 부분에서는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니었다”는 비판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임기 첫 해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보폭으로는 이상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감독의 모든 것이 되는 ‘성적’도 냈다.
시즌에 들어가기 전 세운 목표도 어느 정도 이뤘다. 시즌 전 “선발투수 육성”과 “홈런군단 양성”, “어린 선수들에게 점진적 기회”라는 세 가지 세부적인 틀을 숙제로 안고 들어갔다. 이 중 홈런군단 이미지는 확실히 굳혔다. 무려 234개의 홈런을 쳤다.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거의 모든 타순에서 한 방이 나오는 무시무시한 타선이 됐다. 한 방이 주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컸다. SK의 이 기록을 깰 수 있는 팀은 SK뿐이라는 말은 대다수의 구단 관계자들이 공감한다.
김광현이 빠진 선발진에서도 희망이 있었다. 박종훈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문승원의 시즌은 청룡열차였지만, 결과적으로 안전벨트를 매는 데 성공했다. 내년에는 좀 더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어린 선수들도 조금씩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성장 속도의 아쉬움은 둘째로 치더라도, 내년 전력 구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90년 이후 출생자들이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군도 투자와 함께 나아졌다. ‘황무지’라는 3년 전 평가와는 많이 달라졌다. 특히 투수 파트는 인내 속에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야수들도 2년 정도 군 순환이 이뤄지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 충분하다. 이처럼 SK의 성과는 단순히 보이는 ‘75승68패1무’에만 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에는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시즌을 마쳤다는 것일 수도 있다.
고비를 넘긴 SK의 내년 전망은 ‘외견상’ 밝아 보인다. 올해의 ‘악재’가 내년에는 ‘호재’로 돌아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최대 악재였던 김광현은 순조롭게 재활 중이다. 상태가 아주 좋다. ‘잠재적 위협’이었던 힐만 감독의 경험 문제는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걷어낸다. “즉시 활용이 가능한 왼손 투수를 재활 중인 투수로 바꿨다”는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김택형도 돌아온다. 불펜에서 일익이 예상된다. 올해 경험을 쌓은 젊은 선수들도 성장이 기대된다. 이론적으로는 올해(+7) 이상의 승패마진도 무리는 아니다. 5승을 더 벌면, 내년에는 3위 싸움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방심은 금물’ SK가 준비해야 할 것들
그러나 다른 팀들도 바보는 아니다.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똑같이 희망을 품는다. 사령탑 교체, 굵직한 프리에이전트(FA) 영입, 파격적인 외국인 투자로 전력을 살찌우려 할 것이다. 반대로 SK는 이 부문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사령탑 교체 효과는 이미 누렸다. 대형 FA를 잡으러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외국인 라인업이나 기조도 올해와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이는 ‘육성’이라는 길을 선택한 그들이 감내할 일이기도 하다. 돈을 덜 쓰는 대신 프런트와 현장 모두가 더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
프런트가 먼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올해 팀의 약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명쾌하게 파악해야 한다. 왜 불펜은 1년 사이에 폭삭 무너졌는지, 압도적인 홈런 1위임에도 불구하고 득점생산(RC)은 왜 리그 평균 수준에 그쳤는지, 주루와 수비에서 점수를 벌거나 아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를 분석하고 발전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발전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내부적으로도 분주한 겨울이 될 것이다. 당장 2차 드래프트가 초미의 관심사다. SK의 팜은 어느덧 ‘TOP 3’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린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지키면서, 지금 1군에 필요한 부분을 긁어줘야 한다. 불펜 선수 구성에 문제가 있다면, “한동민을 달라, 김동엽 없으면 하지 않겠다”는 통에 엄두도 못 낸 불펜 트레이드도 다시 추진할 만하다. 선수단에 중복된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쳐내는 작업도 필요하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조직 내부 ‘사람’에 대한 투자는 누차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현장도 마찬가지다. ‘5강’이라는 성과에 지나치게 팡파레를 크게 울릴 때는 아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우승권 전력’ 팀과의 격차를 가장 실감한 곳은 다름 아닌 현장이었다. 올해 운영의 운영에서 미진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원점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팀 안팎으로 신뢰를 잃은 투수교체 타이밍과 불펜 운영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데이브 존 투수코치의 방식은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적어도 “3~4선발의 불펜 전환”이라는 무책임한 아이디어가 다시 나와서는 곤란하다.
다행인 것은 조직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힐만 감독은 경청할 줄 아는 인사다. 미국에서 프런트 주도의 운영을 많이 경험한 덕인지 피드백이 빠르다. 내년에는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염경엽 단장도 사실상 올 겨울이 단장으로 맞이하는 첫 겨울이다. 소신을 가지고 팀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 인사다. SK의 조직이 생각보다 둔하지도 않다. 갈수록 의사결정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3위'를 이야기하는 구단에 다시 한 번 딴지(?)를 건다면, 지금의 전망은 장밋빛이 너무 짙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IF'는 많다. 올해 잘된 부분이 내년에도 똑같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미완인 질주였던 올해를 넘어, 그들이 내년 꿈꾸는 “3위 이상의 싸움”을 벌이려면 지금 이 시점부터 합심에 다시 뛰어야 한다. 올해처럼 내년에도 기자가 아닌 그들이 옳기를 기원한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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