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 만난 사람들] '혹사 대신 박사 학위' 김성용 야탑고 감독의 철칙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9.28 14: 09

2017년 9월 1일 서울 목동야구장. 제45회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이 열렸다. 분당 야탑고와 서울 충암고의 맞대결. 미소를 지은 건 야탑고였다. 야탑고 야구부 창단 20년 만에 일궈낸 첫 우승의 순간이었다.
김성용 야탑고 감독에게 이번 우승은 조금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김 감독은 1997년 가을, 야탑고 창단 당시부터 원년부터 함께했다. 첫해는 코치로 제 역할을 다한 뒤 이듬해부터 직접 지휘봉을 잡았다. 20대 후반의 패기 넘치던 청년은 이제 노련한 여우로 탈바꿈했다.
OSEN과 만난 김성용 감독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처음으로 맛본 우승. 김성용 감독은 '힘든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김 감독은 "창단 초기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선수 수급 자체가 힘들었다. 전학생도 이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학교 직원들부터 학부형들까지 모두 도와줘서 위기를 넘겼다"라고 밝혔다.

올 시즌도 순탄치는 않았다. 황금사자기는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했으며 청룡기는 1회전 탈락의 아쉬움을 맛봤다. 김성용 감독은 봉황대기를 앞두고 저학년 선수들 위주로 명단을 꾸렸다. 일종의 극약 처방이었다. 그리고 이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야탑고는 고학년 위주의 무리시키는 운영 없이도 창단 첫 우승을 일궈냈다.
김성용 감독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현역 야구 감독 중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공부하는 야구인'으로 널리 알려진 양상문 LG 감독도 석사 학위를 갖고 있지만, 박사는 김 감독이 유일하다. 김 감독은 단국대에서 체육측정평가를 전공했고, 고교야구 포수의 송구 동작 분석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따냈다.
감독 역할만으로도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 대체 어떤 이유로 시간을 그렇게 쪼갠 걸까. 김 감독은 "선수들이 오전에 수업을 듣는다. 그때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학원에 가서 오전 수업을 들었다. 내 지식을 정리정돈할 계기가 필요했다"라고 설명했다. 학위 취득 과정에서 정작 김 감독은 견문을 넓히는 효과를 더 누렸다. 박사 과정은 세미나 위주로 진행된다. 투창 등 육상부터 타 구기 종목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이들이 김 감독과 함께 세미나를 가졌다. 김 감독은 결국 '스포츠는 하나다'라는 간단하면서 위대한 진리를 느꼈다고 한다.
'박사' 김성용 감독에게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혹사'다. 당장 이번 봉황대기 우승 과정만 봐도 그렇다. 서울고와 8강전에서 '에이스' 신민혁은 88구를 던졌다. 이튿날 4강, 으레 감독들이라면 신민혁 카드를 다시 꺼낸다. 그러나 김 감독은 신민혁을 철저히 쉬게 했다. 김 감독은 "준결승에서 민혁이를 써서 이겼다? 그럼 결승전이 문제였다. 만일 결승까지 쓰려면 3연투 아닌가. 그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결국 4강전을 쉰 신민혁은 결승전서 1⅔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고교야구와 떨어지지 못하는 키워드가 바로 혹사다. 김 감독은 "입시 제도 자체가 문제다. 많은 이닝을 던지며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혜택을 준다. 사실 신체 구조상 투수의 투구수보다 휴식 간격이 문제다. 아무리 좋은 매커니즘을 가진 투수도 등판 간격이 짧으면 한계가 있다. 고교야구에서도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이를 위해 학위 공부도 하며 견문을 넓힌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배움'을 얻어가는 것이다. 김 감독은 야탑고가 '강팀'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강팀은 승패에 연연하는 팀이다. 승패보다는 매 경기, 매 순간 느낌이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모두 배우는 과정이다. 야구의 기본기부터 개인의 좋은 인성까지 배우는 기간이 됐으면 좋겠다. 고등학교가 끝이 아니다. 프로든, 대학이든, 야구를 그만두든 졸업 후 할 일이 훨씬 더 많다. 선수들 인생에 거울이 되는 시기였으면 좋겠다". 김성용 감독의 이야기다.
혹사없는 야구를 하고 싶은 김 감독. 박사 학위 취득은 그 맥락의 연장선이다. 야탑고를 '거들떠보지 않는 학교'에서 '누구나 가고 싶은 지망 0순위 학교'로 탈바꿈시킨 김성용 감독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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