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위즈랜드] 피어밴드, 꼴찌 팀의 에이스로 뛴다는 것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7.24 05: 44

피어밴드는 23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넥센전에 선발등판, 6이닝 3피안타(2피홈런) 2볼넷 8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그는 팀이 4-2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가며 '50일만의 승리'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불펜의 방화로 승리 도전을 또다시 미뤄야 했다.
▲ 고독한 에이스 대신 'One Team'의 일원
피어밴드는 올 시즌 18경기에 선발등판해 116⅔이닝을 소화하며 7승8패, 평균자책점 2.93을 기록 중이다. 준수한 성적. 그러나 kt 타선은 피어밴드가 마운드에 있을 때 2.72점을 지원해줬다. 규정이닝을 채운 22명의 선발투수 가운데 19위다. 1.89점의 지원을 받은 재크 페트릭(삼성)을 제외하면 하위 세 명(피어밴드, 돈 로치, 고영표) 모두 kt 선수다. 9이닝당 득점지원으로 환산해도 4.24점에 불과하다.

때문에 피어밴드는 최근 세 경기서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고도 승리 없이 1패를 떠안았다. 리그에서 이닝 소화 4위, 평균자책점 3위에 올라있지만 7승은 초라하다. 선발투수로서 김이 빠질 법한 상황이다.
그러나 피어밴드는 이러한 이야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올 시즌 너클볼을 구사하면서 성적이 좋아 만족스럽다. 지금 흐름대로 '괜찮은 투수'라는 평가를 유지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오히려 피어밴드는 포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너클볼은 포수들에게 까다로운 구종이다. 하지만 장성우나 이해창 모두 흘리지 않고 잘 받는다. 투수로서는 든든할 수밖에 없다"라며 "경기 전 포수들과 볼 배합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일 포수가 '너클볼이 유독 안 좋다'라고 하면 과감히 버린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 시즌 피어밴드의 너클볼 구사율은 20.6%. 그러나 36.5%에 달하는 날부터 7.6%에 그친 날까지 구사율은 널뛴다. 포수를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2015년 넥센에 입단해 지난해 kt로 적을 옮긴 피어밴드. 그는 어느덧 3년차 외인이다. 피어밴드가 생각하는 KBO리그의 가장 큰 매력은 '원 팀(one team)'이다. 그는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KBO리그는 유독 시합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 모두 플레이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반응한다. 그렇게 승리를 위해 응원하는 문화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일까. 그는 자연히 kt라는 팀에 녹아들었다. 외국인 선수라는 타이틀 대신 '야구 선배'로서 젊은 투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투수진의 평균 연령이 어린 kt로서는 든든한 멘토인 셈이다. 단,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바로 '먼저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피어밴드는 "평소에는 먼저 장난도 치지만 야구에 대한 조언을 먼저 꺼내지는 않는다. 그 자체로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며 "먼저 다가오는 선수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는 고영표와 야구 얘기를 많이 나눈다"라고 밝혔다.
▲ 그가 팬들에게 안겨주고 싶은 자랑거리
피어밴드에게는 한국 생활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기사 번역이다. 피어밴드는 4월 15일 잠실 LG전서 9이닝 7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팀의 1-0 승리에 앞장섰다. 경기 후 피어밴드는 "상대 감독이 너클볼에 대비한다는 기사를 번역해 읽었다. 때문에 구사율을 확 줄였다"라고 비결을 털어놨다.
단순히 자신의 기사만 검색하는 게 아니다. 피어밴드는 친한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는지를 틈틈이 검색한다. 그는 "닉 애디튼(전 롯데)이 웨이버 공시됐다는 소식도 기사로 접했다"라며 "KBO리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사로 매일 체크하고 있다"라며 미소지었다.
한국 야구가 궁금한 건 피어밴드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 세라 피어밴드는 남편의 등판일이 아니어도 kt위즈파크를 찾는다. 소프트볼 선수 출신의 세라 역시 KBO리그의 매력에 빠졌다. 대구에서 열린 올스타전에도 아이들과 함께 찾아 남편을 응원했다.
이처럼 '피어밴드 패밀리'는 운동 가족이다. 올 시즌 피어밴드 반등의 일등공신 너클볼은 그의 아버지에게 전수받았다. 피어밴드의 아버지는 고등학생 때까지 야구를 했다. 투수는 물론 내외야를 오가며 활약했다. 자연히 아들 트레이(8)의 진로도 궁금해진다. 피어밴드는 "어려서 그런지 정적인 야구보다는 동적인 미식축구를 좋아한다. 본인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 지지할 생각이다"라며 "그럼에도 아이들이 방학 때면 야구장에 데려오는 것은 세상에 다양한 직업이 있고, 그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한다는 사실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주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상황이 편치는 않을 터. 게다가 피어밴드는 이제 30대 초반의 젊은 선수다. 에릭 테임즈(밀워키)가 그러했듯, 메이저리그 '역수출'에 대한 생각이 있지는 않을까. 피어밴드는 "좋은 조건으로 빅 리그에서 뛰는 꿈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kt 생활도 만족한다. 구단에서 나와 내 가족들 신경을 많이 써준다. 나는 물론 가족들도 한국을 좋아한다. 또 하나의 집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 말미, 피어밴드는 kt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날씨가 매우 더운 데다 팀 성적마저 좋지 않다. 그럼에도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팬들이 많다. 팀 전체가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 팀은 아직 어리다. 성장할 것이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성장을 함께해줬으면 좋겠다. 훗날 kt가 강팀이 됐을 때 '내가 저 선수 어린 시절부터 응원했어'라는 자랑거리를 안겨줄 것이다."
고독할 것만 같았던 꼴찌 팀의 외국인 에이스. 하지만 피어밴드에게 kt는 이미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 kt 담당 기자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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