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사자후] ‘사전접촉 의혹’ 프로농구 FA제도, 헛점 투성이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7.05.23 07: 32

프로농구 자유계약제도(Free Agent)의 허점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한국프로농구는 선수의 선택권을 일부 제한하는 제한적(Restricted) FA를 운영하고 있다. 원소속구단에 먼저 FA선수 재계약 협상권을 준 뒤 결렬돼야 타 구단이 영입협상을 할 수 있다. 2차 협상이 이뤄지기 이전에 타 구단이 FA선수와 사전에 접촉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KBL 규정상 자유계약선수 관련 사전모의, 담합, 매수 등이 발생할 경우 구단은 차기 신인선수 1라운드 선발권이 박탈되고, 2~4000만 원의 제재금이 매겨진다. 해당 선수는 해당 구단과 계약이 해지되고 2년 간 KBL 선수등록이 말소된다. 2년 후 해당구단이 아닌 나머지 구단으로 이적해야 한다. 1~2000만 원의 추가 벌금도 물어야 한다. 

이러한 중징계에도 불구하고 사전접촉은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농구계의 중론이다. 사전접촉을 잡아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KBL이 경찰이나 검찰처럼 관계자들의 통화내역을 조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KBL 관계자는 “KBL은 사법기관이 아니다. 제보에 의존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전했다. KBL에서 사전접촉으로 징계를 받은 사례는 없었다.
▲ 쏟아지는 사전접촉 의혹들
FA선수 영입전은 결국 정보전이다. 그 선수의 가치가 얼마이고, 선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알아내는 팀이 주도권을 쥐게 된다. 정직하게 원소속팀과 계약이 틀어진 후 접촉한다면 이미 계약의 주도권을 빼앗긴 뒤다.
A 선수는 원소속구단과 관계가 틀어져 일찌감치 시장에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는 1차 협상에서도 형식적인 자세로 일관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구단관계자는 “선수가 계약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다. 희망제시액도 ‘알아서 써 달라’는 식으로 말했다. 자신을 영입하기로 약속을 한 구단이 있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선수도 돈보다 이적을 원하는 등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구단 입장에서 타 구단과 ‘사전접촉’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FA 선수가 자신 있게 시장에 나가기란 쉽지 않다. 사전접촉 없이 시장에 나갔다가 어느 팀의 구애도 얻지 못해 할 수 없이 원소속팀과 불리한 입장에서 3차 협상을 하는 선수도 나온다.
또 다른 B 선수는 원소속팀과 계약이 틀어진 뒤 특정팀으로 가기로 이미 결정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해당선수 영입을 원하는 구단은 “선수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이미 전화기를 끄고 잠적했다. 특정구단에 가기로 벌써 입을 맞춘 것이 아니겠나”라고 의심했다.
물론 선수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다만 농구계에서 이미 사전접촉이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의심은 널리 퍼져있는 상황이다.
▲ 사인&트레이드로 드러나는 속내
지난 시즌 기준 보수 순위 30위 안에 드는 FA선수는 보상조건이 까다로워 애초에 영입이 쉽지 않다. 이 선수를 영입할 경우 보상선수 1명 + 연봉의 50% 또는 연봉의 200%를 원소속구단에 지급해야 한다. 막대한 출혈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 사인&트레이드다. 일단 재계약을 맺은 뒤 다른 선수와 맞바꾸는 형식으로 보상을 피하는 것.
최근 KBL에서 막대한 보상조건을 모두 감수하며 선수를 영입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만한 가치의 선수가 없었기 때문. 대부분의 구단이 사인&트레이드 방식을 선호한다. 문제는 타 구단과 트레이드를 타진하는 과정에서 해당 선수가 이적할 마음이 있다는 것이 미리 드러난다는 점이다.
사인&트레이드 제안을 받은 구단은 다른 구단보다 해당선수가 시장에 나온다는 점을 먼저 알 수 있다. 영입전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선수와 원소속구단의 협상기간이 매우 길지만 큰 의미가 없다. 선수가 시장에 나온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1초라도 빨리 접촉해 영입을 타진 것이 유리하다. 트레이드 논의에서 배제된 다른 구단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여지가 있다.
▲ 떳떳하게 이적하지 못하는 선수들
선수입장에서도 현 FA제도는 문제점이 많다. 프로선수는 연봉으로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이 당연하다. FA 권리는 선수에게 일종의 특권으로 축제분위기가 돼야 한다. 하지만 선후배를 먼저 따지고 정과 의리를 중요시하는 한국문화 특유의 풍토에서 자칫 ‘돈만 밝히는 선수’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FA로 팀을 옮기는 선수는 친정팀과 불편한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선수가 시장에 나가려면 자신의 가치가 얼마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사전접촉을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자신의 시장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원소속팀과 계약하는 것도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다. 물론 사전접촉은 규정으로 금지돼 있다. 선수들은 축복받아야 할 FA기간에 숨어 지내는 등 마치 죄인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
타 프로종목과 달리 선수협회도 없고, 대부분의 선수가 대리인(에이전트)이 없다보니 FA관련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불리한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C 선수의 경우 “어떤 생각으로 시장에 나왔는지 모르겠다. 주위에서 제대로 조언해준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분위기가 이렇게 경직되다보니 언론에서도 소위 ‘오피셜’이 뜨기 전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NBA처럼 추측성 보도를 할 수가 없다. 분위기 한 번 띄워보려다 한 선수의 경력을 망치는 수도 있기 때문. 비시즌에 농구FA관련 보도가 확연히 줄고, 팬들의 관심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다.
프로야구는 지난 비시즌부터 원소속구단 우선협상을 폐지했다. FA기간에 원소속구단도 다른 팀과 처음부터 동등한 위치에서 해당 선수 영입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사실상 팽배한 사전접촉으로 1차 협상에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비시즌 최형우, 차우찬 등 대형선수들이 팀을 옮기며 연일 화제를 뿌렸다.
반면 농구의 경우 FA관련소식은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이 보인다. 이적에 너무 제약이 많다보니 전력균형도 이루기 어렵고, 팬들의 흥미도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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