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쎈 테마] '투수도 벌크업?' 구속과 근육량의 상관관계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2.20 06: 25

[OSEN=최익래 인턴기자] 넥센발 벌크업 열풍은 지난 수년간 KBO리그를 휘몰아쳤다. 대상은 주로 야수들. 하지만 최근 메이저리그(MLB)를 중심으로 투수들도 적극적인 벌크업에 나서고 있다.
'토르' 노아 신더가드(뉴욕 메츠)는 이번 오프 시즌 동안 7.7kg의 근육을 더했다. 구속 증가를 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약 158km의 포심패스트볼 평균구속으로 MLB 선발투수 전체 1위였던 그였지만 만족을 못했다. 마에다 겐타(LA 다저스) 역시 이번 겨울, 근육을 5kg 붙였다. 이유는 신더가드와 달리 '많은 이닝 소화를 위한 체력 다지기'였다.
투수들은 예민하다. 작은 변화에도 성적이 널뛴다. 신더가드나 마에다처럼 단번에 근육량을 늘리는 것은 큰 모험이다. 과연 이 모험이은 성공으로 이어져 투수들에게도 근력 운동이 정답으로 떠오를까?

▲근력보다는 유연성
강윤구(넥센)는 2013시즌 41경기에서 130이닝을 던지며 6승6패7홀드, 평균자책점 4.36으로 호투했다. 늘 발목을 잡았던 피홈런을 6개로 줄이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후반기, 체력적 한계를 느낀 그는 2014시즌을 앞두고 벌크업으로 체격을 키웠다. 이강철 수석코치는 탐탁지 않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본인의 의사가 워낙 확고했다. 류현진(다저스) 만큼의 체격을 목표로 몸을 불렸다.
하지만 성적은 처참했다. 24경기에 나와 42이닝을 던지며 1승1패1홀드, 17피홈런, 평균자책점 7.71을 기록한 것이다. 강윤구는 시즌을 마치고 상무 입대를 결정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강윤구가 갑작스러운 벌크업으로 밸런스와 유연성을 잃었다"라고 평가했다. '벌크업 공화국' 넥센에서도 투수들은 근육량 증가를 피했다. 이장석 넥센 대표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를 우려할 정도로 말이다.
삼성 라이온스 트레이너코치로 6년간 근무했던 이한일 대구 TREX 트레이닝센터 대표가 꼽은 '투수의 최우선 덕목'은 유연성이다. 그는 "유연성 다음은 순발력과 밸런스다. 근력은 4순위쯤으로 중요하다"라고 순위를 매겼다. 근력 향상이 무조건 구속의 증가, 호투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근력이 투수의 구속을 좌우한다는 주장은 임창용(KIA)의 사례로 반박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임창용의 프로필상 신장은 180cm, 체중은 75kg. 쉽게 말해 호리호리한 일반인 몸매다. 그럼에도 전성기 시절 160km를 상회하는 공을 던졌다.
이한일 대표는 이를 유연성 덕으로 꼽는다. 그는 "사실 임창용의 근력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 대신 유연성이 어마어마했다. 강속구는 바로 그 유연성에서 나왔다. 근력도 중요하지만 유연성과 순발력, 밸런스가 동반되지 않은 근력은 부상의 지름길이다"라고 분석했다.
강흠덕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 재활센터장 역시 이러한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힘은 근력에서 나온다. 근육량이 많을수록 더 강한 힘이 나오는 것은 운동생리학적으로 당연하다. 근력이 붙을수록 타자들은 비거리가, 투수들은 구속이 증가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에 근육을 붙이는지 여부다"라고 설명했다.
강 센터장은 건축을 예로 들었다. 집을 짓는 과정을 떠올려보자. 든든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벽돌을 얹는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척추를 잡아주는 코어 근육(기둥)이 갖춰진 상태에서 벌크업(벽돌)을 더해야 한다. 만일, 단순히 근육량 증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선수 주위에는 부상의 위험이 늘 도사릴 것이다.
▲투구폼을 만져도 구속은 늘지 않는다
그렇다면 투수들은 근육량을 늘리는 대신 오로지 유연성이나 코어 근육 향상에만 매달려야 할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러한 태도를 견지했다.
‘BCS 베이스볼 퍼포먼스'는 일본프로야구(NPB) 한신 타이거즈에서 11년간 트레이닝코치로 활동한 마에다 켄이 대표로 있는 야구 교습소다. 이곳의 한국지점 대표는 '일본통' 김우식 씨. 그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신체의 사용법이다. 그는 "호리호리한 선수들이 강속구를 던지는 사례도 많다. 구속은 근력이나 순발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빠른 공은 좋은 팔 스윙에서 나온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우식 대표는 "올바른 투구폼으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해 가속을 만드는 것이 팔 스윙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쉽게 말하면, 근력과 순발력은 관절을 움직여 팔 스윙을 만든다. 구속은 이 팔 스윙이 얼마나 좋은지에 따라 좌우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근육질에 순발력까지 갖춘 선수라도 효과적인 투구폼을 갖추지 못한다면 빠른 구속을 낼 수 없다. 반대로 호리호리한 몸매의 선수들이 강속구를 던지는 비결은 자신이 가진 근력과 순발력을 팔 스윙으로 온전히 전달할 폼을 갖췄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몸에 최적화된 투구폼이 빠른 구속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강흠덕 센터장 역시 같은 생각이다. 강 센터장이 두산 트레이닝 코치로 있던 시절 세운 원칙은 하나, '투구폼 수정 금지'였다. 그는 "지도자가 빠른 구속이나 제구 등을 이유로 선수들에게 일괄적인 투구폼을 강요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마다 몸이 다 다른 만큼 투구폼도 다르다는 이유였다.
강 센터장은 "팔꿈치나 어깨를 쉽게 다치는 투수가 있는 반면 고무팔이라고 불리며 부상을 안 당하는 선수도 있다. 이는 본인에게 잘 맞는 메커니즘으로 던지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투수의 핵심은 밸런스. 그 밸런스를 좌우하는 것은 자신만의 메커니즘이며 그것을 찾아주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역할이기에 일괄적인 강요는 피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구속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투구
또한 전문가들은 "메커니즘에 대한 생각없이 '과체중'을 이유로 급격한 다이어트를 지시한다거나, 근육량을 무작정 늘리라고 하는 것도 투수의 생명을 깎아먹는 일"이라고 경계했다.
유희관(두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유희관은 분명 과체중 선수다. 그러나 2013시즌부터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판타스틱4'의 중심을 맡고 있다. 구속이 빠르지는 않지만 특유의 제구력을 앞세워 타자들을 요리하고 있다.
강흠덕 센터장은 "유희관의 근육량이 많다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유희관의 장점은 제구력이다. 이 제구력은 투구 메커니즘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유희관의 릴리스포인트는 리그에서 손꼽힐 만큼 일정하다. 이는 제구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양궁으로 따지면 과녁의 정중앙, '텐 포인트'를 연달아 맞힐 수 있는 셈이다.
강 센터장은 "만약 어떤 지도자가 구속 상승을 이유로 유희관에게 근육량 증가를 지시했다면 어떨까. 그는 특유의 메커니즘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희관은 구속도 빠르지 않은 데다 제구력까지 잃으며 그저 그런 투수로 전락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투수의 가치는 구속이 아니라 좋은 투구 내용에서 나온다.
▲KBO리그의 풍속도는?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 갑작스레 근육량이 확 증가한 신더가드와 마에다는 올 시즌 더 날카로운 모습을 보일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단, 기존의 방식이 깨지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았다.
강흠덕 센터장은 "메이저리그 수준의 트레이너들 이론 역시 비슷하다. 그들은 코어 근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신더가드와 함께하면서 본인의 메커니즘을 잃지 않도록 유연성과 코어 근육을 신경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상 노출 위험 없이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이한일 대표 역시 "유연성과 순발력,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으면서 근력을 늘린다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을 예로 들었다. 그는 "사람들은 오승환의 근육에만 집중하지만 사실 그는 유연성이나 스피드가 더 대단하다. 단거리 달리기 기록을 측정해보면 어지간한 야수들보다 낫다. 그런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근육량 증가는 투수의 구속을 늘리는 묘약이 아니다. 투수 본인의 유연성이나 코어 근육, 투구 메커니즘 등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더해야 하는 조미료인 셈이다. 신더가드와 마에다가 성공을 한다면 KBO리그의 풍속도도 함께 달라질 것이다. 근육과 메커니즘의 시너지를 꾀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ing@osen.co.kr
[사진] 신더가드-강윤구-임창용-유희관 (위부터)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