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쎈 타임머신] '완장의 무게' 지난 12년 대표팀 주장史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2.13 05: 58

[OSEN=최익래 인턴기자] 태극마크의 책임감에 주장 완장의 무게가 더해진다면?
대표팀 주장은 선수단 사이의 가교 역할은 물론 코칭스태프와의 '소통 창구' 기능도 도맡아야 한다. 각 팀의 주축들이 모여 개성이 뚜렷한 만큼 소속팀 주장보다 책임이 무겁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표팀 주장은 대체로 제 역할을 다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지난 12일,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김재호(32)를 주장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당초 주장으로 이대호를 생각했지만 그동안 대표팀을 위해 헌신했고 또 6년 만에 복귀한 소속팀에서도 주장을 맡다보니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김재호는 최고령 임창용(41)부터 최연소 김하성(22)의 중간 나이대다. 또한 '국대 베어스' 8명 중 한 명이라는 부분에서 가교 역할 수행에 유리하다.

김재호는 지난 프리미어12가 첫 대표팀이었다. 당연히 대표팀 주장 완장은 처음. 본인도 "전혀 예상 못한 일이다.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는 소감으로 얼떨떨함을 표현했다. 김재호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최근 국제대회 주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캡틴 김재호'의 모습을 그려보자.
2006 WBC - 이종범(당시 36·KIA)
7경기 타율 4할, 3타점 / 4강
대표팀 '캡틴'의 가장 좋은 예. 4번타자 김동주가 대만과의 1차전부터 어깨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대표팀의 표정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그러나 이종범이 선수단을 잘 추스르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당시 2라운드 한일전에서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결승 2루타를 때리며 두 주먹을 치켜드는 장면은 아직도 팬들의 뇌리에 선명하다. 대표팀 타율, 최다안타 1위. 대회가 끝난 뒤 1루수 이승엽, 투수 박찬호와 함께 WBC 올스타(ALL World Team)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 박재홍(당시 33·SK)
2경기 타율 0.000 / 동메달
‘리틀 쿠바’의 마지막 대표팀 국제 대회. 하지만 팀과 개인 성적 모두 잡지 못하며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박재홍의 대표팀 커리어는 아시안게임에 야구가 첫 도입된 1994년 히로시마 대회(은메달)가 그 시작이었다. 이후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금메달), 2000년 시드니올림픽(동메달),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금메달),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까지. 20세기말~21세기초 대표팀 외야의 한 자리는 무조건 박재홍의 몫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대회에서 팀은 ‘도하 참사’라고 불리는 충격적 성적을 거뒀고 박재홍 역시 7타수 무안타로 고개를 떨궜다.
2008 베이징올림픽 - 진갑용(당시 34·삼성)
6경기 타율 1할 / 금메달
"좋은 고참이 선수들을 잘 이끌어줘 한결 수월했다. 늘 고마운 마음이다." 이 대회 사령탑이었던 김경문 감독이 진갑용에게 남긴 말이다. 이처럼 진갑용은 몸상태가 정상이 아님에도 대표팀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살랐다. 백미는 쿠바와의 결승전. 그는 예선 대만전에 허벅지 부상을 당해 주전 마스크를 강민호에게 넘겨줬었다. 그러나 강민호가 결승전 9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대학 시절까지 포수 경험이 있던 이택근이 몸을 풀 정도로 상황은 긴박했지만 진갑용이 '자진 등판'했다. 그리고 정대현과 함께 병살타를 만들어내며 '전승 금메달' 신화를 완성했다. 타격 성적은 1할이지만 그 기여도는 기록 이상이었다.
2009 WBC - 손민한(당시 34·롯데)
출장 기록 없음 / 준우승
팀은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정작 손민한은 단 한 차례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앞선 2006년 대회에서 손민한은 '에이로드 삼구삼진' 등 인상적인 장면을 남기며 3경기 2승, 평균자책점 2.45로 맹활약했었다. 선수협 회장직을 맡고 있던 손민한은 선수들의 표결 끝에 캡틴의 자리에 올랐다. 출장 기록이 없음에도 두터운 신망을 바탕으로 선수단을 하나로 묶었다는 평가가 따른다. 그러나 WBC에 초점을 맞추느라 무리해서 몸을 만들었고 어깨 통증을 얻어 2009시즌부터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 봉중근(당시 30·LG)
1경기 1⅓이닝 무실점 / 금메달
최고참 박경완과 넘버2 정대현 모두 말수가 많은 타입이 아니었다. 결국 서열 3위 봉중근의 어깨에 완장이 채워졌다. 봉중근은 광저우 출국 당시부터 "2006년 도하 대회의 복수를 하겠다"며 칼을 갈았다. 진가는 대만과의 예선 첫 경기에서 빛났다. 등판을 준비하던 윤석민이 KBO 기록 담당 직원의 실수로 엔트리에 누락된 점이 드러나며 출장할 수 없게 된 상황. 몸도 채 풀지 않은 봉중근이 마운드에 올라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에 주춧돌을 놓았다. 만일 봉중근이 난타당해 경기를 내줬다면 팀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첫 단추를 잘 꿴 대표팀은 우승까지 쾌속으로 달려갔다.
2013 WBC - 진갑용(당시 39·삼성)
2경기 타율 0.000 / 1라운드 탈락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류중일 감독의 야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 게다가 앞선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선수단을 이끌며 금메달 신화를 만든 경험까지. 진갑용의 주장 선임에 딱히 이견을 달 수 없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표팀의 성적은 그때와 180도 달랐다. 진갑용은 주전 마스크를 강민호에게 넘겨주고 2선에서 팀을 독려하려 했다. 그러나 강민호가 9타수 무안타, 진갑용이 1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며 포수진은 '구멍'이 되고 말았다. 대표팀은 그렇게 네덜란드와의 1차전 패배를 극복하지 못한채 일찌감치 짐을 싸야 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 박병호(당시 28·넥센)
5경기 타율 3할1푼6리, 2홈런, 5타점 / 금메달
생애 첫 성인 대표팀 무대에서 주장 완장까지 찼다. 게다가 지난 10여년 국가대표팀에서 20대 주장은 박병호가 유일하다. 여러 모로 파격이었던 셈. 류중일 감독은 "야구를 너무 잘해서 뽑았다"는 독특한 주장 선임 이유를 밝혀 화제를 모았다. 3번 김현수-5번 강정호 사이 중심을 잡는 4번타자로서 2홈런, 5타점을 기록하며 제 역할을 다했다.
2015 프리미어12 – 정근우(당시 33·한화)
7경기 타율 3할5푼3리, 9타점 / 우승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 첫 발탁된 이후 정근우는 대표팀의 붙박이 2루수였다. 근성 넘치는 플레이는 대표팀 사기 진작의 촉매재였다.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프리미어12에서 생애 첫 주장 완장까지 찼다. 4강에서 숙적 일본을 꺾었음에도 "동요하지 말고 차분히 결승을 준비하자"고 말했던 점,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도쿄돔에서 너무 왁자지껄하게 즐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던 부분은 캡틴으로서의 원숙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김인식 감독은 정근우의 낙마를 아쉬워한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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