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배려, 이승엽이 배팅볼 투수를 자처하는 이유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6.09.08 13: 00

'국민타자' 이승엽(삼성)은 잘 알려진대로 투수 출신이다. 1993년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4승(평균 자책점 1.74)을 거두며 경북고의 우승을 이끌었다. 우수 투수상은 그의 몫이었다. 1995년 삼성 입단 후 팔꿈치 통증 탓에 타자로 전향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다.
팀내 최고참이 된 이승엽은 올해 들어 경기 전 배팅볼을 던지는 횟수가 잦아졌다. 타격 훈련을 마친 뒤 마운드에 올라 경북고 좌완 에이스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구속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정확한 컨트롤과 다양한 변화구를 바탕으로 타자들의 훈련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할 게 없으니까 한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배팅볼 투수로 나서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삼성은 좌완 배팅볼 투수가 부족하다. 경기 전 타격 훈련할때 상대 선발 투수의 유형에 따라 배팅볼 투수가 타자들의 훈련을 돕는다. 하지만 좌완 배팅볼 투수가 부족하다 보니 우완 배팅볼 투수가 던지기도 한다. 과거 삼성의 최장수 1군 매니저였던 김정수 차장이 좌완 배팅볼 투수 1순위였다.

그는 현장 보조 요원들과 가볍게 캐치볼을 하면서 몸을 푼 뒤 마운드에 오른다. 자칭 '스플릿 핑거 체인지업 싱커'라는 정체 불명의 변화구(?)를 선보이며 타자들의 훈련을 도왔다. 그랬던 김정수 차장이 스카우트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좌완 배팅볼 기근 현상이 심해졌다.
류중일 감독은 "좌완 배팅볼 투수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배팅볼을 잘 던지는 게 결코 쉽지 않은데 좌완 투수라면 대부분 어느 정도 야구를 하는 선수들이라 프로에 입단하거나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다 보니 좌완 배팅볼 투수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교 좌완 특급 출신 이승엽이 배팅볼을 던지니 효과는 만점. 후배들도 대선배의 솔선수범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이승엽은 "아무래도 지명 타자로 나가다 보니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땀을 더 흘리려고 그런다. 자주 던지는 것도 아닌데 조금은 쑥쓰럽다. 내가 던져줘서 후배들이 잘 친다면 기분좋은 일이다. 그만큼 팀 승리에 도움이 됐다는 의미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좌완 배팅볼 기근에 시달리는 삼성. '맏형' 이승엽의 솔선수범이 더욱 빛난다. /wha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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