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삐삐와 닐스의 나라 스웨덴, '행복한 나라' 뒤에 감춰진 '정담'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5.12.28 15: 26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 나승위, 파피에, 304쪽, 1만 7000원
1902년의 스웨덴, 전직 지리 교사였던 한 여성이 국립교원협회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는다. 청소년들에게 스웨덴의 지리와 풍습을 알려줄 지리 독본을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기꺼이 요청을 받아들인 그녀는 스웨덴의 지리뿐만 아니라 방방곡곡에 숨어 있는 민담과 전설, 신화까지 끌어들인 신비로운 느낌의 방대한 책을 써냈다. 그 책은 그녀에게 1909년 ‘스웨덴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셀마 라겔뢰프(1858~1940). 그리고 그녀가 쓴 책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아니 지금도 전 세계 아이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는 『닐스의 신기한 여행』이다. 마법에 걸려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요정이 돼 거위 등을 타고 스웨덴 방방곡곡을 날아다닌 닐스의 환상적이고 흥미진진인 모험담인 『닐스의 신기한 여행』은 우리나라에도 날아와 큰 사랑을 받았다.
어린 시절 닐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한국의 한 여성이 우연한 기회에 스웨덴에서 살게 됐다. 좋든 싫든 정 붙이고 살아야 할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호기심을 품은 그녀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읽은 동화 속 주인공 닐스를 기억 속에서 찾아냈고, 닐스의 여정을 덧그리는 스웨덴 여행을 계획했다.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는 닐스의 이야기를 씨줄로, 그리고 작가가 찾아간 도시 이야기를 날줄로 삼아 탄생했다. 세계 최고의 행복국가인 스웨덴의 태곳적부터 오늘에 이르는 긴 역사와 풍성한 문화 이야기가 아주 특별한 이야기책에 담겼다.
지은이가 처음 스웨덴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계기는 말하자면 ‘질투’와 ‘선망’이었다. 지은이는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한국인인 자신의 눈에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게으름뱅이로 비치는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잘사는지 그 역사적 단초를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장수국가에서 사는 행복한 노인의 죽느니만 못한 처절한 외로움 같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이 아니라 감춰진 것을 들춰보고 싶은 욕구”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스웨덴에 관한 책을 집어들었다.
사실 우리나라에 비친 스웨덴의 이미지는 ‘복지국가의 아이콘’이라는 피상적인 ‘유토피아’가 강하다. 물론 30, 40대 세대에게는 추억의 주인공인 금화를 잔뜩 가진 천하장사 소녀 ‘말괄량이 삐삐’의 고향이자, 해마다 11월이 오면 전 세계인들을 잠 못 이루게 만드는 노벨상의 나라, 위대한 식물학자 칼 폰 린네의 나라, 그리고 ‘영상의 철학자’라 불리는 현대영화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나라이자, DIY의 기치를 널리 퍼뜨린 ‘가구공룡’ 이케아의 본국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부끄럽게도 한국의 ‘입양아’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받아들여 키워준 고마운 나라이기도 하지만, 이런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스웨덴은 머나먼 북구의 낯선 나라다. 
오늘날 스웨덴은 최고의 복지국가지만 불과 100여 년 전, 셀마가 『닐스의 신기한 여행』을 집필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보릿고개 시절만큼이나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고향을 버리고 머나먼 타향으로 이민을 가던 비참한 때였다. 그렇다면 100년 동안 스웨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은이는 스웨덴의 최남단 스코네 지역에서 수도인 스톡홀름을 품은 중부의 우플란드 지역까지, 닐스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성과 도시와 마을과 공원 등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와 산과 호수 등 자연이 만든 세계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샅샅이 훑어가면서 공간과 시간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닐스의 고향인 뵘멘회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북유럽의 고즈넉한 농촌 풍경이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지고, 기러기 떼와 함께 있는 닐스에게 첫인사를 하고는 벌판 한가운데 우뚝 선 돌로 지은 성 글리밍에후스를 찾아간다. 블레킹에 지방에서는 닐스가 꿈속에서 “못생긴 입술 만세!”를 외친 왕, 수줍음을 많이 타고 무뚝뚝했지만 오로지 백성을 위해 나라를 통치했던 검소하고 겸손한 왕 칼 11세와 그가 건설한 칼스크로나의 해군 기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베드로의 실수’로 척박하게 태어난 ‘탄생 비화’를 간직한 스몰란드 지역도 찾는다. 하느님은 베드로의 실수에 탄식했지만, 오늘날 이 척박한 땅은 ‘말괄량이 삐삐의 고향’으로서 수많은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동화나라를 품은 땅이 되었다.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을 고집스러운 농부의 땅’ 예틀란드에서는 개발과 자연보호라는 명제가 충돌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토케른 호수와 ‘스웨덴 최고의 건설 실책’이라 불리는 예타 운하가 등장한다. 쇠데르만란드 지역에 가면 스웨덴 최초의 농민 봉기 지도자인 ‘스웨덴의 녹두장군’ 엥겔브렉트 이야기가 튀어나오고, 철광석과 구리를 잔뜩 숨기고 있는 베스트만란드와 달라르나 지방 이야기에서는 스웨덴의 부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은밀한 비밀이 밝혀진다.
수도인 스톡홀름을 ‘차지한’ 우플란드에서는 19세기에 전 세계를 뒤흔든 민족주의의 산물인 내셔널 로만티시즘이 곳곳에서 엿보이는 스톡홀름과 스웨덴의 ‘민속촌’ 스칸센을 통해 진정한 민족주의 정신이란 무엇인지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복지국가를 이룬 뒷면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 협력한, 말하자면 ‘나치의 우방국’이었다는 어두운 과거가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역사의 아이러니도 느끼게 한다.
닐스와 함께한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닐스의 신기한 여행』의 작가 셀마 라겔뢰프의 고향인 베름란드 지역의 모르바카 장원이다. 셀마의 어린 시절 숨결과 그녀의 인간 사랑과 생명 존중, 즉 인본주의를 생생하게 느끼고 『토지』의 작가 박경리를 오버랩시키면서 닐스와 함께 달려본 스웨덴 여행은 마무리된다.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는 일회용 라이터가 일상화되었어도 날이 어둑해지면 여전히 성냥으로 불을 붙여 양초에 촛불을 켜는 낭만을 즐기는 스웨덴 국민들, 옆집 사람과 인사도 나누지 않는 냉랭함(?)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핏줄인지도 모를 아시아의 고아들을 데려다 훌륭한 시민으로 키워내는 대범한 따뜻함을 갖춘 나라 스웨덴의 어제와 오늘이 살아 숨 쉬는 책이다. 맛집 정보나 교통 정보, 숙박 정보 대신에, 촛불이 켜진 식탁을 둘러싸고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만큼이나 아늑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지은이 나승위 씨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뒤셀도르프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대구 KBS 라디오 구성작가와 온라인 게임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했다. 2009년 우연한 기회에 가족과 함께 스웨덴으로 이주하여 유럽 대륙과의 소통도시로 알려진 스웨덴 남부의 말뫼에서 살고 있다. 무역회사인 NSW & Nordic AB를 운영하고 있으며 스웨덴과 한국의 문화 교류 증진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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