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사바틴에서 푸시킨까지, 한국 속 러시아의 흔적을 찾아서

[새책] 사바틴에서 푸시킨까지, 한국 속 러시아의...
한러수교 25주년을 결산하려는 취지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의 김현택 소장과 라승도, 이지연 교수가 함께 집필한...
[OSEN=강희수 기자] 을지로입구 지하철을 나와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이 이어지는 뜰 안에 세워진 조금은 생뚱맞은 동상이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시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 곳곳에 러시아 출신 건축가 사바틴이 지은 건물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 또한 많은 이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한국에 처음 커피가 들어온 것도, 처음으로 발레라는 새로운 춤을 선보인 것도, 심지어는 한국 근대 연극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모두 러시아 문화를 통해서였다는 것은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체결을 계기로 양국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증명한다. 서울과 인천, 진해 등에 남아 있는 한국 최초의 서구식 건축물들은 이 시기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일제의 한반도 지배에 이어 해방과 분단의 시기를 거치면서 당시 소련과의 직접 교류가 불가능했던 상황에서도 러시아 고전 문학과 음악, 연극 등을 매개로 우리의 러시아 문화 수용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러수교 25주년을 결산하려는 취지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의 김현택 소장과 라승도, 이지연 교수가 함께 집필한 책, '사바틴에서 푸시킨까지: 한국 속 러시아 발자취 150년'은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민간 차원에서 진행된 다양한 교류와 협업 사례를 중심으로 양국의 문화예술 교류사를 소개하고 있다. 한·러 양국 간 공식적 관계 수준을 규정하는 외교 용어, 경제통상 분야 통계 수치, 상호 방문객 수 등과 같은 객관적 요소들을 살펴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인식 수준과 관심, 문화예술 교류를 통해 형성된 정서적 공감대, 일상생활에 스며든 러시아의 흔적 등과 같은 무형의 자산들을 조명하는 작업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우리에겐 생소하게 들리는 책 제목에 등장하는 사바틴과 푸시킨은 한·러 문화예술 교류사에서 한 획을 그은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인물이다. 아파나시 사바틴은 1883년 인천으로 입국하여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러시아 공사관 건물과 독립문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다. 궁정을 출입하며 고종 황제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사바틴은 우리 근대사의 주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그가 설계하여 세운 건축물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사바틴이 서울에서 활약하던 때부터 한 세기 이상의 시간이 훌쩍 지난 2013년 11월에는 러시아 국민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동상이 서울 한복판 을지로 입구에 세워졌고, 동상 제막식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친히 참석해 역사적인 연설하기도 했다. 짧게는 지난 25년, 길게는 지난 150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러시아와 러시아 문화의 발자취를 찾아 그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 책의 제목을 “사바틴에서 푸시킨까지”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컨대, 사바틴에서 푸시킨까지: 한국 속 러시아 발자취 150년은 우리 안에 형성된 러시아의 모습을 150년에 달하는 긴 호흡의 역사적 맥락에서, 특히 수교 이후 지난 25년 동안의 구체적 변화 가운데서 조망한다.

제1부 “러시아의 눈에 비친 한국 근대사”는 1854년 러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반도를 방문한 작가 이반 곤차로프 등 러시아인들의 여행기, 조선 궁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러시아인들과 그들이 전해준 신문물, 서울 등 전국 각기에 남아 있는 러시아식 건축물, 한반도에 머물며 우리 일상생활을 화폭에 담은 화가들의 소중한 그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2부 “한국이 사랑한 러시아 예술”에서는 시대 상황에 따라 부침의 역사를 겪은 한국의 러시아어 교육, 우리 근현대 문학의 형성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러시아 문학, 공연 예술, 특히 연극 분야 교류가 우리 예술가와 관객들 사이에 일으킨 반향, 우리 정서 깊숙이 파고든 러시아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강한 호소력 등을 다루고 있다.

제3부 “한국과 러시아가 함께 열어 가는 미래”에서는 한국에 사는 러시아인들의 삶, 한국인들 사이에 대중적 스타로 떠오른 러시아인, 스포츠와 과학 분야 교류, 사이버 공간상의 러시아 관련 동호인 모임, 우리 일상생활 속에 들어온 러시아의 생활문화 등을 중심으로 수교 이후 25년에 걸쳐 한국에 형성된 러아 커뮤니티의 활동, 이들이 한국 사회에 심어준 인상 등이 소개되어 있다.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러시아 대사는 추천사를 통해 한·러 양국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는 이 책이 한국과 러시아 두 나라와 양국 국민이 한층 더 가까워지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 말하며 이러한 민간차원의 교류를 통해 양국이 진정한 상호 이해와 협력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밝히고 있다.

한러 문화교류의 역사를 총망라하고 있는 일종의 백서로서 이 책은 2015년 한 해 동안 이루어진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수교 25년을 결산하는 매우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러시아 언론을 통해서도 이미 몇 차례 소개 돼 러시아의 한국학 연구자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은 바 있는 이 책은 곧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러시아에서 출판될 예정이기도 하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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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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