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감독 사퇴' LG, 역사는 되풀이된다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4.04.24 06: 10

지난 하루는 LG에게 불면의 밤이었다. LG를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김기태 감독이 23일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김 감독 취임 이후 지금까지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현장과 프런트 사이에서 곪아 있던 무언가가 극단적인 사건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성적이라는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안으로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김 감독이 결국 자진사퇴라는 최후의 방법을 썼다.
김 감독은 지난해 팀을 정규시즌 2위에 올려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후에도 구단의 확실한 지원을 받지는 못했다. ‘신연봉제’ 시스템 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기존 선수들의 연봉은 만족할 만큼 오르지 않았다. 암흑기 시절의 기록적인 삭감만 있었을 뿐, 성과가 났다 해서 인상파티는 없었다. FA 시장에서도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외부 영입에 나서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 있어서도 처음 목표로 했던 선수를 데려오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에이스인 레다메스 리즈를 잃는 불운까지 겹쳤다. 전력 강화 요인이 크지 않았고, 2차 드래프트에서 임재철을 지명한 것과 두산에서 방출된 김선우와 계약한 것이 큰 영입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또한 지난 시즌 LG 마운드를 팀 평균자책점 1위(3.72)로 이끈 차명석 코치를 잃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차 코치를 놓친 것은 명백한 LG의 실수였다. 지난 겨울 차 코치가 팀을 떠나는 과정에서 LG는 김 감독의 마음마저 잃고 말았다.
차 코치와 함께하지 못하게 될 것을 안 순간 김 감독의 회의감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감독직에 오르자마자 터진 박현준, 김성현의 승부조작 사태, 2012년 봉중근의 ‘소화전 사건’과 2013년 임찬규의 ‘물벼락 사건’ 때도 김 감독은 늘 “감독인 나의 책임이다”라며 모든 짐을 혼자 짊어졌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차마 말로 할 수 없던 프런트와의 갈등이 있었다. 거기서 생긴 감정들이 차 코치와 이별하는 과정에서 더욱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수준의 스트레스와 압박감 속에서도 결코 쉽게 내색하지 않던 김 감독이 떠난 상황에서, 어떤 인물이 LG의 감독직을 맡게 된다 하더라도 수많은 감독들의 유니폼을 벗게 만든 LG 프런트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흔히 LG 감독직을 두고 ‘독이 든 성배’라 한다. 이 팀을 잘 이끌어 나가기는 어렵지만,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는 세련된 이미지의 인기 구단인 만큼 성적만 내면 감독으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어 탐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LG 감독이라는 자리는 독이 든 성배가 아니었다. 그냥 독배다.
LG는 전날 김 감독의 자진사퇴를 발표하며 가능하면 계속해서 김 감독을 설득해보겠다는 뜻을 전했다. 떠나겠다는 사람을 설득하겠다는 것은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잃어선 안 될 사람이 떠나려 하고 있다는 것을 LG 스스로도 깨닫고 있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으로 보인다. 소를 잃어본 경험은 누구보다 풍부하지만, 외양간은 그대로다.
팀을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시켰던 김성근 감독을 내치고 10년 동안의 암흑기를 관통하면서 LG 프런트의 무능은 감독이 바뀌는 때마다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LG는 자신들의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너무 빨리 망각했고, 팀이 꼴찌로 추락한 최악의 상황에서 다시 길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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