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soul을 만나다] '무명'에 목숨 건 모녀, 문광자-이에스더
OSEN 최준범 기자
발행 2012.09.12 14: 17

“단추와 옷이 같이 떨어져야 명품 아닐까요? (웃음)”
디자이너 브랜드 ‘드맹’의 대표 문광자(사진 오른쪽)가 가진 옷에 대한 생각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문광자는 1992년부터 한국 전통 소재인 ‘무명’을 가지고 지속해서 작품 활동을 해온 아트웨어 디자이너다. 
문 디자이너는 6일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드맹' 출범 45주년을 맞아 패션쇼를 열고 무명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파했다. 패션 마케팅을 공부한 딸 이에스더 이사(드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 왼쪽)가 함께했다. 모녀는 광주와 서울에서 ‘드맹’ 부티크를 함께 운영 중이다.

이번 패션쇼는 현시대에 사라져가고 있는 명품 소재 ‘무명’을 가지고 아트웨어와 일상복 60여 벌을 선보여 많은 셀러브리티들의 갈채를 받았다.
패션쇼 다음날 청담동 '드맹' 부티크에서 아직 쇼 준비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문광자-이에스더 모녀를 만나, 그들이 그토록 중요시하는 '무명'에 대한 이야기를 속속들이 들을 수 있었다.
▲무명의 격을 높여라
 
 
문 디자이너는 ‘The Heritage(더 헤리티지)'라는 주제 아래 이번 패션쇼를 개최했다. 1992년부터 '전통 문화유산' 무명을 고집하며 외길을 걸어온 문 디자이너가 이번 패션쇼에서 가장 외치고 싶었던 것은 ‘무명의 고급화’.
“저는 이번 쇼를 통해서 서민들이 즐겨 입었던 소재인 무명도 이제 격 높은 자리에 충분히 입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명을 가지고 파티복과 양장, 웨딩드레스 등의 품위 있는 옷들을 다양하게 디자인했습니다.(문광자)”
"우리는 전통 의상을 살려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무명으로 전 세계가 인정할 만한 양장을 만들어야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쇼에 나온 의상들은 기본적으로 가장 싼 것도 300만원이 넘는 높은 가격대지만, 무명은 그럴 만한 고급 소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이에스더)"
패션쇼 속 그의 의상들은 하나같이 단아하고 우아하다. 빈티지의 향기가 묻어나는 독특한 주얼리들도 무명의 격을 높이는데 한몫 톡톡히 거들었다. 문득 이번 쇼에서 모델들이 착용한 주얼리들은 모두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어머니를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부르는 이에스더 이사가 대답했다.
“선생님 주머니에서 나왔죠.(웃음) 원래 저희 선생님이 30년 전부터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액세서리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특히 빈티지에는 세월과 사람 냄새가 배어있다며 광적으로 많이 모으셨죠. 그러다 보니 여러 매체가 저희 액세서리를 협찬해갈 만큼 많은 양의 주얼리를 보유하게 됐답니다.(이에스더)”
문 디자이너는 액세서리를 모으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꾸준히 무명이라는 소재를 돋보이게 할 영감도 얻었다고 설명했다. 주얼리도 좋지만, 역시 무명의 ‘오리지널리티’가 쇼에서는 두드러진다.
“이번 패션쇼에선 무명 고유의 색감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염색되지 않은 흰색 무명옷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소개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자수와 레이스, 스팽글 등을 조화롭게 융화시켜 무명의 새로우면서도 또 다른 면을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했어요. 단추, 스팽글 하나하나 전부 손으로 달면서 '손맛'을 느끼게 해 주려고 노력했어요.(문광자)”
'단추가 옷과 함께 떨어져야 명품'이라고 생각할 만큼, 디테일이 살아 있으면서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지향한다는 문 디자이너다운 말이다.
▲ ‘무명’, 그저 좋아했다
문 디자이너가 무명으로 옷을 만들고자 결심했을 때에도 이미 무명은 고가였고 생소한 소재였다. 옷을 사는 사람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가격과 낯선 질감. 문 디자이너에게도 무명옷을 만들기란 단단한 각오가 필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부담을 안고서까지 특별히 무명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저는 예쁘고 광택이 반짝반짝 빛나는 현대적인 소재보다 ‘손맛’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소재를 평소에 더 좋아했어요. 무명이 ‘딱’ 그랬죠. 손맛이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불규칙한 그 모습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저 좋아서 한 일이에요. 무명으로 만든 옷은, 한 번 입어본 사람은 꼭 다시 찾아요. 입으면 자세부터 똑바르게 잡히거든요. 입어보지 않으면 그 가치를 알 수가 없지요.(문 디자이너)”
'드맹' 브랜드에 엄청난 이익을 남겨주기는 커녕, 노력에 비해 별다른 이윤을 창출하지는 못하는 무명옷 만들기였지만 그의 선택은 훗날 뉴욕과 하와이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문 디자이너는 2003년 11월 뉴욕 소호의 ‘앤섬갤러리’에서 무명 드레스 전시회를 열었으며, 2005년 5월에는 하와이 ‘비숍뮤지엄’에서 또 한 번의 무명 드레스 전시회를 아들 이성수(화가)와 함께 공동 전시 형태로 열었다.   
“이때 선생님께선 앤섬갤러리에서 실비아 왈드(미국 현대 미술의 대가)에게 ‘천으로 만든 조각품’이라는 찬사도 받으시고 또 비숍뮤지엄에서는 ‘아트웨어 작가’로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첫 번째 국내 디자이너가 되셨죠. 지금 와서 생각해도 정말 대단해요.(이에스더)” 
‘디자이너 문광자의 무명으로 만든 옷’이라는 작품집도 출판해 무명을 널리 알리는 데 더욱 힘을 쏟았다. 모녀는 곧 무명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책을 낼 예정이다. 이에스더 이사는 "연말쯤 나올 것 같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 ‘무명’의 세계화,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
모녀의 신념은 똑같다. '무명의 세계화'다. 그러나 무명이라는 옷감 자체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만큼 일단 무명의 생산이 급선무가 아닐까.
“무명이 구하기 어려운 소재인 것은 사실입니다. 직접 베틀로 짜야 하는데, 그 기술을 가진 사람도 이제는 거의 없으니까요. 이번 쇼에서 선보인 옷들도 무명을 개인적으로 모아서 제작한 것들이에요. 하지만 최근 양주시에서 만평 규모의 목화밭을 운영하며 무명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미 시장님은 물론, 도지사님의 승인까지 끝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는 무명의 아름다움을 뒷받침해 줄 옷을 열심히 만들고, 양주시 목화밭에서는 질 좋은 무명을 생산하는데 힘쓰면 될 것 같습니다.(이에스더)” 
드맹에서 만드는 옷 중 무명옷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다. 워낙 노력이 많이 들어 몇 벌 만들지 못하는 옷이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간 드맹에서 옷을 제작할 만큼의 무명은 확보돼 있다고. 모녀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무명은 어떤 모습일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무명을 누구나 입을 수 있게끔 대중화할 생각은 없어요. 일단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저희는 무명을 하이엔드 문화로 끌어내고 싶어요. 무명옷이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고급 문화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무명의 가치를 알아보는 적은 사람들이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입는 최고급 문화. 이것이 저희가 만들고 싶은 무명의 미래입니다.(이에스더)” 이에 문광자 디자이너도 한마디 보탰다.
“무명을 고급문화로 만들기 위해선 저희 노력으론 많이 부족합니다. 사실 그 동안 정말 많은 노력을 했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단계는 이제 넘어섰다고 봐요. 이제는 정부에서도 직접 나서서 무명옷이 세계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라져가는 고급 섬유 무명을 지켜 온 이들은 이제 지키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무명을 고급문화로 만들기 위해 온 정성을 쏟고 있었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을 지닌 한자성어 ‘진인사 대천명’. 이들이 바라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국가의 지원이었다.
junbeom@osen.co.kr
에스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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